이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냥 있기보다는
온몸을 태워버리기로 했다
연두에서 초록이 되기까지
그 살가웠던 나날들
푸른산을 향해 짐승처럼 울부짖었던 나날들을 다 태워 버리고
이름도 바꾸기로 했다
나뭇잎이라고 했다가
폼을 좀 잡는다고 이파리라고 하기도 했고
잘난 사람 흉내 낸다고 잎새라고 하기도 했다
나뭇가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쳐서
ㅡ 사실은 바람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드디어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단 두 글자
낙엽
나는 이런 이름이 좋다
귀하지도 않고
그냥 바스러져 흙이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나무에게서도 버려져야 비로소 가지게 되는 이름
그래서 가지게 되는 시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
아무 말 하지 않고 나만의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시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이름
따뜻하고 포근하게 내리는 흰눈처럼 스르르 사라져버리는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