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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풍경

이름

by 1004들꽃 2018. 5. 1.



이름

 

 

엄마가 되고 안사람이 되고 그냥 아내가 된 여자

아들은 엄마를 엄마라고만 불렀고

남편은 여보도 아닌 아요라고만 불렀다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알아듣는 신비한 현상이었다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양, 이양, 박양이라고 부르면 대답이 들려왔다

이름이 없기는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김주사, 이주사, 박주사라고 부르면 대답이 들려왔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여자들도

김주사, 이주사, 박주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오빠가 되었다가

아이가 태어나자

철수 아빠가 되었다

둘째를 낳아도 여전히 철수 아빠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모님도 자신이 지어준 이름을 버리고

애비라고 불렀다

고모가 돌아가셨는데

전광판에 적힌 빈소현황의 고인명을 보고서야

고모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형이라고 형수라고 불렀던 사람의 이름이

낯설게 다가왔다

이름 없이 살아왔던 세월이 낯설지도 않는데

이별 후에야 겨우 낯선 이름을 대한다

환갑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철수 아빠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매일매일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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