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53
눈물도 나지 않는다
울 수 있을 때까지 울고 나면
마른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데
눈물도 나지 않는 울음은 부끄러워서
그냥 울지 않기로 한다
생각을 지워버렸는데도
글이 씌어 질 수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 부끄러움을 글로 쓰고 있다
평생 부끄럽지 않은 글은
다만 부끄럽다고 쓴 글뿐이어서
더욱 부끄러운 것이다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
나뭇잎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
자꾸 쓸쓸해지고
더 쓸쓸해질 때까지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다보면
눈물도 없는 글이지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눈물을 다 흘려버려서
흘릴 눈물이 없다고 변명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