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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산길을 걸으며

by 1004들꽃 2018. 5. 14.


산길을 걸으며

 

 

일주일 내내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있다. 술을 계속 마시다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입맛도 없어진다. 신기하게도 음식은 먹지도 못하는데 술은 마시면 들어간다. 이렇게 몸이 혹사당하게 되면 일단 술을 멀리하고 음식을 적게 먹으며 몸의 컨디션을 조절해야만 한다. 짐승들은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스스로 굶어서 몸의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린다. 사람들은 몸에 이상이 생겨도 미련스럽게 먹어댄다. 음식도 그렇지만 술은 그보다 더 심하다. 접대를 하는 문화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정착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접대는 인사불성으로 술이 취하여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만 흡족한 접대로 인식된다. 그것은 친구나 부담 없는 사람끼리의 만남에도 전염되어 술을 마신 다음 소위 기억이 사라져버리는 머릿속 지우개 이야기를 후일담으로 나누곤 한다. 서로 전날 밤 일어났던 일을 모르는 것이 아마도 상호간에 좋을 것이다.


일주일 동안 혹사당했던 몸을 이끌고 몸속의 세포가 제자리를 찾을 힘을 보태주기 위하여 자굴산을 찾았다. 자굴산 산행 예상경로는 다음과 같다.

쇠목재 정상 베틀바위 둘레길 전망대 절터샘 둘레길 형제바위 쇠목재

 

산에 파묻혀 상쾌한 공기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몸속에 잔류하고 있는 술의 기운과 피부에 알알이 박혀있는 술의 흔적을 땀과 함께 땀구멍을 통하여 배출시키기 위해서는 숨이 가쁘도록 오르막을 걸어야만 한다. 눈 쌓인 겨울 자굴산은 쉽사리 땀을 허용하지 않는다. 동쪽 사면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오히려 귀를 얼게 만들고 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다리에서 오는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잠시라도 쉬었다가는 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쇠목재에서 정상까지는 가팔라서 쉬지 않고 걷는다면 땀은 충분히 흐를 것 같았다.


완만한 길을 벗어나 철재계단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발을 내딛었다. 쇠목재에서 정상까지는 그동안 내린 눈이 길바닥에 얼어붙어서 걷기가 힘들었다. 계속 미끄러지고 발걸음은 더뎠다. 나뭇가지가 없었으면 올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겨우겨우 올라가보니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떠들썩했다. 네 발로 기다시피 오른 덕분에 온 몸에서 김이 피어났다. 몸을 펌프질하여 얻은 땀이다. 쉬지 않고 오른 결과 몸속의 온갖 아우성이 목구멍을 통하여 올라왔다. 물을 마시며 진정시켰으나 기침이 끊임없이 나왔다. 앉아서 안정을 취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정상에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방향으로 가다 베틀바위를 지나 오른쪽으로 난 길을 걸어가면 둘레길에 접어들게 된다. 길은 평탄해서 마치 오솔길을 걷듯 평온하게 다가온다. 둘레길을 만들면서 드러난 폭포에 도착하면 물을 만날 수 있다. 추운 겨울이라 물의 흔적만 있을 뿐 물은 보이지 않는데 봄이 되어 얼음이 녹기 시작하거나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이 되면 의령에서도 자연이 만들어 낸 폭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옆에 넓은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로 올라가니 아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앉아서 술을 한잔 나눠 마셨다. 그리고는 바로 일어나 인사하고 길을 계속 걸었다. 땀이 나다가 식어버린 관계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얼마를 가니 다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잠시 쉬면서 배낭에 있는 한라봉을 먹으며 목을 축였다. 자굴산의 서쪽을 바라보니 끝없이 이어진 음지쪽 산등성이들이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양지쪽의 산등성이는 솔빛으로 푸르렀고 군데군데 활엽수들의 군락지는 회색빛으로 겨울을 나고 있었다. 머지않아 새봄이 오면 꽃과 연푸른 잎을 뿜어내며 산은 다시 푸른 숲을 이룰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은 그들의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계절마다 뿜어낸다. 그 계절들은 시기에 맞춰 나무뿌리를 통해 땅 밑에 숨어 있는 것들을 나무의 몸통으로 옮겨 놓고, 그것들을 각각의 계절로 만들어 줄기로 분배하면 다시 나뭇가지로 전달되고 나뭇가지는 제각각 계절을 뿜어낸다. 봄이면 봄향기를 뿜어내고 여름이면 싱그러운 푸른빛을, 가을이 되면 나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색을 나뭇잎에 드러낸다. 색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다시 낙엽이 되어 땅 밑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겨울에는 동면을 하며 긴 기다림의 세월을 살아가면서도 세찬 바람이나 눈을 옹골차게 받아내어 가끔 겨울꽃을 피우기도 한다. 습기를 많이 품은 안개를 만나면 상고대가 되고 눈을 만나면 눈꽃을 피운다. 풍성한 눈꽃을 인 나무는 계절의 절정을 이룬다. 우듬지에 핀 눈꽃은 햇살을 받아 위태롭게 반짝인다.


글은 사실에 입각하여 써야하지 않겠냐고 생각을 해 보았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써내려간다면 그 글은 이미 글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실과 사실을 조합하여 또 하나의 사실을 만들게 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게 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로 치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실들은 제각각이고 그 제각각들은 제각각 생사고락을 경험하게 된다. 생겼다가 변화하고 소멸해 갈 때 그들은 또 다른 사실과 교류하고 교류를 통해서 서로 다른 사실과 결합하게 된다. 결합의 방법은 다양한 것이어서 하나의 사실과 다른 두 개의 사실이 결합할 수도 있을 것이고, 두 개의 사실과 다른 하나의 사실이 결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사실은 생성과 동시에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결합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만들어지면서 그들에게 자기 자리를 내어 주고 소멸한다. 마치 변증법의 정반합 원리를 그대로 따르는 듯하다. 조선시대의 사람들이 쓰던 말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사극을 보면서 조선시대의 사람들은 저렇게 말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사실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갔을 때 우리는 그들이 쓰는 어떤 말도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조선시대에 쓰던 말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쓰는 말과 남한에서 쓰는 말이 정반대인 경우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말로서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사실에 입각해야 하지만 사실을 주고받다가 어느새 사실은 허울만 있을 뿐 사람들 사이에는 잡을 수 없는 아득한 거리만 생겨나게 된다. 말과 말이 오고가면서 말들은 정체성을 잃고 길을 잃어버린다. 정의가 무엇이며, 도덕이 무엇이며, 사랑이 무엇인가를 말로써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은 말에 입각한 관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을 사람들은 입을 통하여 거침없이 쏟아낸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을 지어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세 치 혀로 사람들을 홀리는 사람들, 온갖 사실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은 사계절을 뿜어내는 자연 앞에서 백전백패할 것이다. 자굴산 둘레길의 서쪽 축을 돌아서 다시 동쪽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자굴산의 뒤쪽이기 때문에 대부분 음지라서 곳곳에 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눈이 있는 곳에는 일부러 신발을 끌며 지나간다.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인지 어릴 적 눈에 대한 기억은 무의식을 흔들어 깨워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른쪽 위로 커다란 바위 세 개가 눈에 들어온다. 의령문학 17호에 소개했던 형제바위다. 만들어 낸 이야기를 소개한 바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주 오랜 옛날, 자굴산 아랫마을에는 두 형제가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웃마을에 아주 어여쁜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두 형제가 모두 이 처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처녀 또한 두 형제를 한 치의 기울음 없이 좋아했다.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정한 시절이라 처녀는 두 형제를, 두 형제는 한 처녀를 동시에 얻을 수는 없었다.

형은 장사를 위해 먼 곳으로 한 달씩 다녀와 한 달을 쉬고 다시 한 달 동안 장사를 나가곤 했고, 동생은 농사를 짓기 때문에 항상 집에 머물렀다. 궁리를 하던 끝에 두 형제는 아무도 모르게 이 처녀와 합동결혼식을 올린다. 형이 장사를 하러 나가면 동생이 이 처녀와 함께 살고, 형이 돌아오면 형은 이 처녀와 함께 살았다. 장사를 떠나면 돌봐 줄 사람이 있어서 든든하고 동생과 함께 농사일을 거들어 주니 좋고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영원히 숨겨질 수는 없었다. 이를 알아차린 세 사람은 아무도 몰래 자굴산으로 들어가 산나물과 약초를 캐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도망간 세 사람을 찾아 자굴산으로 들이닥친다. 인륜을 저버린 죄를 물어 세 사람을 덕석에 말아 때려죽이고 만다. 그러자 하늘도 노하고 산도 노했는지 천둥이 치고 폭풍우가 몰아쳐 산으로 들어 온 마을 사람들을 모두 쓸어내려가 돌무더기에 처박아 버렸다. 살아있는 사람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폭풍우가 치던 중 바위 세 개가 솟아오르니 바로 두 형제와 여인이 바위로 환생하여 지금까지도 오순도순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이야기. 제일 오른쪽이 처녀 바위고, 옆의 바위 두 개가 형제 바위다. 왼쪽이 형이고 가운데가 동생이다.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산길을 걸으며 이야기 한 편 듣는 일도 좋은 일일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역마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기 마련이다. 특이한 지형지물이 있을 경우 쉼터를 만들어 이야기를 한보따리씩 풀어 놓는다면 산행길이 즐거울 것이다. 걸으면서 땀도 한바탕 흘리고 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몸도 상쾌해진다. 다시 한 주를 견뎌낼 힘을 충전하는 것이다. 형제바위를 지나 정자에 잠시 쉬었다가 쇠목재로 내려오면 원점회귀 산행은 끝이 난다.

산에는 숲이 있고 숲에는 개별적인 나무들이 있어 그 개별적인 나무들은 제각각 바람을 맞아들이고 하나도 남김없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자연은 그 바람으로 생명을 키워나가고 그 생명들이 사람들을 살아가게 한다. 눈이 내린 자굴산은 사실로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계절이 주는 자연스러움으로 아무런 보탬도 아무런 생략도 없이 사실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산을 찾는다. 눈이 녹아 질퍽한 길도 가식 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서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산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능선을 넘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겨보라. 나뭇가지를 흔들며 가슴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아보라. 바람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지 마라. 먼 산이 바람을 따라 흘러가는 것을 보며 양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으면 산의 기운이 다가오고 어느 순간 나도 산이 된다. 멀어져서 희미해져가는 산들이 하늘을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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