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계곡의 물소리가 쓸쓸해지고
때늦은 매미소리가
구슬프게 느껴지는 건
나뭇가지에 걸린 잎사귀에서
처량한 바람소리가 나기 때문이지
계절이 깊어가는 만큼
묵직하던 햇살도
어깨 위에 가볍게 부서지고
하늘이 높아지는 만큼
가을꽃들도 기지개를 펴겠지
바람에 실려 온 계절의 향기가
눈썹 위를 스치면
빈집을 지키던 손님은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또 다른 빈집을 찾아 떠난다
계절은 그렇게 소리 없이 왔다가
소리 없이 가는가 보다
모두가 잠든 가을
차가운 달빛만 서성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