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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풍경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다

by 1004들꽃 2011. 6. 24.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다

 


진흙을 뒤집어 쓴 게 한 마리
꼼지락거리는 발이 한스럽다
진탕에 빠져 영원히 나오고 싶지 않은 마음
알아주지 않고 발은 제멋대로 움직인다
가고 싶지 않은 길도 가야만 하는 것이라며
집게발로 헤집고 기어이 기어 나온다
보라 드넓게 펼쳐진 개펄
저 아득하고 알 수 없는 막막함이여
밀려들고 밀려 나가는 저 물길을 따라
한없이 가고 싶지만
진흙탕은 벗어날 수 없는 곳이라고
떠나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속절없는 속울음만 속으로 잦아들고
평생 옆걸음질만 해 온 탓에
앞으로 가려해도 자꾸 옆걸음질만 해댄다
앞을 보지 못하고 가는 그곳엔
배고픈 재두루미 버티고 서서
멀뚱멀뚱 먹잇감을 쳐다본다
옆만 보는 것이 주어진 삶이라면
훤히 드러난 세상인들 무슨 소용 있으랴
제멋대로 움직이는 다리를 잘라내고
진흙 속에 묻혀 흙으로 끼니를 때우고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오직 한 곳만 쳐다보며
개펄사리가 될 때까지 오직 한 곳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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