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아무것도 해 준 게 없구나
너를 위해서
앞으로도 해 줄 게 없어서 미안하다
무엇이든 언젠가는 사라지는데
무엇이 두려워서 꼭 쥐고 있었느냐
쳐다만 보고 있었던 허송세월 동안
주름만 깊어가고
땅바닥만 보며 길을 걸었는데도
꽃은 피었다 지고
나뭇잎 다 떨어질 때까지
너의 뒤에서 아무런 배경이 되지 못했다
너를 아프게 하는 것들 애써 외면하고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네가 아프지 않고 다만
내가 아파서 다행이라 안심시켜서
미안하다
이제 나는
가끔 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과
멀어져 가는 너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것을
내가 살아가는 이유로 삼겠다
먼 길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득해서 좋고
떠나는 너의 시간 속에
돌아오는 시간이 함께 있다는 것으로
나는 안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