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의 단편소설 속의 여인들은 모두 같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상황과 나이가 틀릴 뿐 같은 사람이 세월을 따라 섞이고 분리되며,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경험해나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소통하지 못하여 단절을 경험하고 어떤 계기를 통하여 그 단절을 소통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가 지금 풀숲에서”는 외계인손증후군을 잃고 있는 아내의 왼손에 호되게 당한다. 아내의 오른손이 행동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왼손은 스스로 행동한다. 오른손이 정리해 놓은 것은 왼손은 흐트러지게 한다. 심지어 화분을 던지고, 급기야 남편의 뺨을 때리고 만다. 일밖에 모르던 남편에 대하여 왼손은 불만을 터뜨린다. 그것이 무엇인지,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남편도 아내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소통하고 싶었던 아내의 마음을 왼손이 대신했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여인들”에서는 “백화점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왜 그렇게 도망쳤어?”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남자의 마음을 그가 건네주는 노트를 보고 알게 된다. 그의 아내는 가정부와 의사소통을 하는 노트를 통해 가정부에게 병이 깊다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남편에게는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왜 그렇게 이별의 말도 하지 않고 사라질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여자의 마음을 알고 싶어 찾아왔던 것이다.
세상 끝의 신발, 화분이 있는 마당, 그가 지금 풀숲에서, 어두워진 후에, 성문 앞 보리수, 숨어 있는 눈, 모르는 여인들. 이렇게 7편의 단편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모두 단절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나 각각의 소설들은 단절되어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외되고 타인들과 단절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어떤 계기에 의해서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다음에야 비로소 단절과 소외 속에 있었던 자신을 일반적인 사회로 끌어 올리려 노력하게 된다. 그 노력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자신에게 달려 있겠지만 대게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면 그 속에서 빠져나오기는 쉬울 것이다.
“화분이 있는 마당”에서 이유도 없이 남자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결별편지를 보내고, 그 편지를 받은 그녀는 언어장애와 식이장애를 동시에 앓는다. 그러다가 귀신이 차려준 오이무름을 먹으며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언어장애가 극복되었고 호박잎쌈까지 먹으면서 식이장애마저 말끔하게 극복하게 된다.
“혼자 살려면 사흘 동안 연락이 끊겼을 때 전화를 걸어올 사람이 적어도 다섯 명은 되어야 한다.”는 말로 시작되는 “화분이 있는 마당”은 어쩌면 가장 소외되고 고독한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 고독한 모습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소설이 이야기하는 것들은 단절을 소통으로 이끌어 내자는 것이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무언가의 마니아가 되고, 혼자서 밥 먹는 것을 즐길 수 있고, 그리고 사흘 동안 연락이 끊겼을 때 전화를 걸어올 사람이 적어도 다섯 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부터 사흘 동안 연락을 끊었을 때, 연락이 올 곳은 어느 곳에도 없다. 그래서 더욱, 어느 곳엔가 마니아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혼자서 다니며 혼자서 밥 먹는 것을 즐기면서 다만, 하루하루를 접어나가는 것이다. 접어진 하루가 어떠했는지 알 필요도 없고, 접어야 할 하루 또한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어쨌든 하루는 다가오고 멀어져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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