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부름 / 기욤 뮈소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그 운명을 천사의 부름이라고 했다. 늙은 사람이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 한다면 뭔가 어울리지 않은 말일지 모르지만 나이가 50이 넘어서는 세월에서도 항상 사랑이라는 두 글자는 사람을 설레게 한다. 기욤 뮈소의 소설이 계속 다른 부분을 건드리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서 어쩌면 기대심리가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에서는 세 번의 삶을 되풀이하면서 다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지만, 천사의 부름은 새로운 장르를 제시한다. 현실의 세계에서 모든 일어나는 일들을 직면해서 헤쳐 나가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고의 요리사 조나단, 그리고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아내 프란체스카. 그리고 아들 찰리, 조나단과 공항에서 우연히 부딪혀 휴대폰이 바뀌어버린 매들린. 그 휴대폰과의 사이에서 모든 일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막히게 전개된다.
그래서 운명이라는 이야기가 걸맞는 이야기다. 운명은 둘을 사이에 두고, 휴대폰을 사이에 두고, 둘의 삶을 독자에게 일러바친다. 그래서 독자들과 이야기는 동행하게 된다. 휴대폰은 그냥 휴대폰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검색할 수 있는 정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것을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은 알 것이다. 거의 컴퓨터 수준이니까. 서로 바뀐 스마트폰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조나단과 매들린은 공통 관심사를 발견한다. 운명. 그 둘이 만나야할 운명. 그 둘이 해결해야 할 문제. 천사의 부름에 응답하게 된다.
앨리스 사건과 관련하여 집요하게 수사를 전개하던 매들린은 사건의 해결에 대한 회의로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조나단은 사업의 실패, 결혼의 실패로 자살을 계획했으나 자살여행 중 우연히 만난 앨리스 때문에 자살에 실패하게 된다. 2년이 지난 후 우연히 공항에서 서로 바뀐 휴대폰에 의해 다시 그들은 앨리스라는 소녀에 얽힌 사실들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그들은 그 종착점을 향해 다가가면서 운명적인 만남에 도달한다.
호기심으로 인한 각자 상대방의 휴대폰 탐색으로 둘은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된다. 처음에는 별개의 사람들이 책장을 넘겨가는 동안 점점 가까워지면서 나중에는 꼭 들어맞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 스타일.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에서는 똑같은 날을 세 번 살아가면서 기어이 운명을 만들어낸 것이라면 이번에는 서서히 운명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삶이라는 것은 그 정해진대로 따라가야 하고, 그렇다면 살아가는 것이란 단지, 자신만 모르는 상태에서 정해진대로 가는 것이라면 살아가는 것 또한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것. 아니, 무의미 또한 미래를 모르는 자신에게는 삶 또는 운명일 것인데 그 모든 것들을 정리하듯이 기욤 뮈소의 소설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물론 심오한 철학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글의 행간에서 그것들을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삶들이 그러하듯이 타인의 삶은 그렇게 중요하게 보이지 않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삶은 그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극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연결된 각각의 삶들도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기욤 뮈소는 이번 소설에서 스마트폰을 등장시킨다. 아직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나로서는 상당히 신기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스타워즈나 터미네이터 같이 상상 속의 일들을 화면으로 끌어내는 영화도 있듯이 사람들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 현실을 이야기를 끌어내는 시발점으로 택했다는 것은 참으로 기발한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체적인 모습은 삶을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집요하게 붙들고 있던 미재의 일을 양파를 까듯 차근차근 헤쳐 나가는 모습이다. 그것은 어떻든 삶이기 때문이며 삶이기 때문에 살아내려는 노력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들,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삶이라는 것으로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한 다양한 행태를 이 책에서는 천사의 부름이라고 한다.
최종적인 목표를 운명이라고 볼 때 운명에 도달하기 위한 각각의 부름들은 운명에 도달하기 위한 부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천사의 부름, 운명, 소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소설같은 그 운명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20대를 지나 어느새 늙어버린 거울을 보면서 문득, 그 운명이라는 것을 실감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의 꿈이 청사진이라면 늙은이들의 꿈은 과거의 빛바랜 흑백사진이라고 할까. 그 흑백사진 속에 들어 있는 분홍빛 꿈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천사의 부름은 항상 우리들 주변에서 소리를 내고 있지만 귀를 틀어막고 애써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지 (0) | 2012.08.05 |
---|---|
나의 삼촌 부루스 리 / 천명관 (0) | 2012.06.26 |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 기욤 뮈소 (0) | 2012.01.20 |
모르는 여인들 / 신경숙 (0) | 2012.01.13 |
웃음 / 베르나르 베르베르 (0) | 2011.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