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 황선미
집오리와 청둥오리 사이에서 청둥오리가 태어났다. 잎싹은 그 청둥오리를 키워냈고 끝내 청둥오리가 가야할 길로 보내 주었다.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흑인이 태어났고 황인이 그 흑인을 키워 세상으로 내 보낸다.
혼혈아로 태어난 초록머리는 암탉 잎싹에 의해서 키워진다. 집오리 사이에서도, 마당에서 병아리를 키우는 닭들 사이에서도, 닭장을 지키는 개에게서도 따돌림을 당하는 존재. 결국 마당을 나서 저수지로 가는데 그곳에서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족제비가 기다리고 있다. 초록머리의 아버지 나그네가 왜 저수지로 가라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잎싹은 그래도 마당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족제비를 피해야 했고 먹이를 찾아야 했다.
인생살이란 것이 이토록 만만치 않다. 한 직장에서 버텨내기조차 쉽지 않다. 한 곳에서 버텨내지 못한 사람이 다른 곳에서 어떻게 버티겠느냐는 말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정해져 있는 틀을 이끌어가고자 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의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양한 인간의 본성을 스스로 억누르게 만든다. 인간은 모두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욕망을 억눌러 지배적인 틀 속으로 가두고자 하는 논리는 아닌지.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부모가 살아온 방식대로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모양새다. 모든 사람이 학교에 다녀야 하고 학교에서는 시키는대로 공부해야하고 그 공부한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고자 한다.
그렇게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 길들여진 틀 속에 알맞게 맞춰지고 그 맞춰진 모습이 인생이 된다. 그것은 어쩌면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일 것이고 그 최소한은 사람들을 임금이라는 달콤한 사탕에 얽어매어 꼼짝 못하게 만든다.
잎싹은 알을 낳기 위해 고용되었지만 스스로 알을 낳기를 포기한다. 알을 낳지 못하는 암탉은 쫓겨나고 쫓겨난 암탉은 소망했던 일을 하기 시작한다. 닭의 알은 아니지만 알을 품어 병아리를 생산하고 그 병아리를 보살핀다. 키워내지 않았지만 병아리의 몸 깊숙한 곳에 있던 본능이 서서히 드러나고 그 본능을 스스로 익혀나간다 마침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하늘을 날아오르게 된다. 하지만 초록머리의 성장은 끝난 것이 아니다.
철새들이 날아오는 계절. 청둥오리 떼가 날아오자 초록머리는 그 무리에 편입하고자 잎싹을 떠난다. 잎싹은 그제야 나그네가 했던 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잎싹은 항상 초록머리의 주변을 돌며 관찰하고 보호하고자 한다. 초록머리는 청둥오리의 세계로 편입되어야 하고 그곳으로 온전하게 보내는 것이 잎싹과 초록머리의 아버지인 나그네의 소망이기도 했다.
청둥오리 떼에 적응하지 못해 편입하지 못한 초록머리는 다시 잎싹에게 돌아와 푸념하지만 잎싹은 묵묵히 그 말을 들어준다. 가출한 아들이 기진맥진하여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지쳐있다. 초록머리가 잠이 든 사이에 잎싹은 초록머리의 발에 묶여있던 밧줄을 쪼아 끊어낸다.
초록머리는 다시 청둥오리 무리로 돌아가고 훌륭한 파수꾼 노릇을 해낸다. 드디어 철새들이 떠나가는 계절. 초록머리는 잎싹을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 잎싹과 이별한다. 잎싹은 그제야 날고 싶었다는 소망을 떠올린다. 왜 날고자 노력하지 않았을까. 날기 위해서 연습조차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느새 족제비가 잎싹의 눈앞에 와 있고 잎싹은 이미 움직일 수조차 없을 만큼 지쳐있다. 족제비는 그토록 소원했던 잎싹을 물어뜯는다. 잎싹은 어느새 날개를 훨훨 펼치고 깃털처럼 날아오른다. 저수지와 눈보라 속의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말라비틀어진 암탉을 물고 힘겹게 걸어가는 족제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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