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 김훈
이 땅에서 천주교가 박해를 받던 시절의 이야기다. 천주교가 박해를 받았다고 해야 하는지, 천주교에 다가가려했던 사람들이 박해를 받았다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선의 땅에서는 사학에 다가가려는 자들을 무부무군의 죄를 물어 죽였다. 장살된 자가 있었고 참수되고 효수된 자가 있었다. 거지 아이들은 모가지가 없는 몸뚱이를 끌고 민가의 대문에 사체를 들이밀어 밥을 구걸했다.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정약종은 약전과 약용을 살리기 위해 거짓진술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덕분에 약전과 약용은 유배형으로 감형되었다. 사실과 진실의 사이에서 어느 것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살아있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으로밖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그 살아있음과 죽음은 어느 것이 정의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고 다만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마치 형 집행의 방법을 알려주는 듯 곳곳에서 집행된다. 곤장을 맞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지게 위에서 죽고, 곤장을 맞아 터지고 터진 살이 흩어지고 장독으로 죽거나 형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었다. 그렇게 죽은 자들이 일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연루되어 겨우 목숨을 건진 자들과 유배형을 받은 자들을 합하면 그 수는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
시대의 질곡을 헤쳐 나가기 위해 죽이고 죽었던 사람들 때문에 지금 천주교가 이 땅에 이렇게 탄탄한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일까. 사학을 믿으면 죽는다는 것이 확고한 사실임에도 닿을 수 없는 그 길을 기어이 가야만 했을까. 도대체 그것은 무엇이었는지 현재를 살아가면서 교회와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족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음에도 알 수 없는 먼 길로만 느껴질 뿐이다.
굶어서 죽고 그 죽은 아이를 잡아먹고 아이를 잡아먹은 자가 굶어서 죽어갔던 시절에 그것은 절박했는지도 모른다. 가진자들은 그 가진자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니 당연히 몹쓸 것이었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사람과 사람의 귀천이 없고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하니 솔깃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던 시절에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신념으로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죽음보다도 더 절실한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 절실함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1982년 김수환 추기경이 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에 교황을 초청했고, 1983년 한국 천주교 순교자 103위 시성을 승인했다. 1984년 5월 6일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 천주교 200주년 및 순교자 103위 시성식을 거행하여 대한민국의 103위의 순교자가 비로소 성인이 된 것이다. 기해박해, 병오박해 79위 순교자와 병인박해 24위 순교자들이 성인이 된 날이다. 공교롭게도 나의 생일과 같은 날짜이다. 하지만 그 날짜와 나와의 연관성은 조금도 없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순교자 22명 정도가 더 성인으로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소설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많은 사실들은 있지만 진실은 독자들이 밝혀내도록 요구하고 있다. 거의 200년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이야기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고문의 기록과 고문에 의해서 발설한 이야기, 그리고 사학의 근절을 촉구하는 윤음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 기록들은 살아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몸속에서 새롭게 해석될 것이다. 그 해석이 어떻게 이루어지든지 해석의 바탕은 당연히 순교자들에게 있을 것이고 그 순교자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서 사람들 사이에서 영원히 기억되어 질 것이다.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당을 나온 암탉 / 황선미 (0) | 2011.11.28 |
---|---|
난설헌 / 최문희 (0) | 2011.11.27 |
완득이/김려령 (0) | 2011.11.05 |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이해인 (0) | 2011.09.28 |
7년의 밤 / 정유정 (0) | 2011.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