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나날
꽃이 지고 열매를 맺고
낙엽이 진다
새 꽃을 피우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다
꽃이 지고나면 새 꽃으로
다시 세상을 밝힐 수 있다고
열매를 맺고 낙엽이 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익은 열매를
모두 가져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음에는 반드시 새 꽃을
오랫동안 피우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긴 기다림도 기다릴 수 있었다
새 꽃이 피면서
다시 열매에 욕심이 생긴 사람들은
무릎을 꿇으며
이번만큼은 열매를 가져가게 해달라고 했다
꽃이 필 때마다 속았던 나는
그의 무릎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도 모르게 입술이 약간 삐뚤어지며
비웃음 같은 것이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제
꽃도 열매도 무릎도 믿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