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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풍경

까마귀

by 1004들꽃 2020. 7. 10.

까마귀


대나무 끝에 위태위태
까마귀가 앉아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면서
검은색이 흐트러질까

날개를 퍼덕이며 색깔을 확인한다

 

검은색을 벗어버리면
버티어 나갈 힘이 다 빠질 것 같아
안간힘으로 검은색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좀비처럼 눈이 빠지고 깃털이 빠지고 발톱이 빠지고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자
다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나무 끝에서
위태위태 흔들리며 보았던 세상은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세상에서도 살아
날개를 훌훌 털어 버리고 알몸으로도 살아

 

이제 시를 쓰기로 했다
까마귀가 보지 못한 세상을 끌어와
적막해도 적막하지 않는 바람의 노래를 불러 보겠다
죽여버리고 다시 살아가는 적막의 노래를 불러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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