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기욤 뮈소
- 나중에 다 가게 되는 곳이 존재할까?
만약에 죽는 날을 알게 된다면, 정확한 날짜가 아니더라도 얼마 후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나중에 다 가게 되어 있는 곳이 있기라도 한다면 그곳에서 모두 만나게 될 텐데, 그렇다면 어떤 생각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물론 그것을 위하여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이에 그 사람의 성품이 그렇게 변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네이선이라는 유명한 변호사 앞에 어느 날 굿 리치라는 의사가 나타나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 그를 데리고 다닌다. 굿 리치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네이선을 데리고 가서 어떤 청년을 보며 저 청년은 곳 죽을 것이라고 한다. 청년은 네이선이 보는 앞에서 권총을 자살을 한다. 그 청년의 머리에 하얀빛이 보였다고 한다. 굿 리치는 죽음을 미리 볼 수 있는 메신저였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딸아이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한 여자의 죽음도 예견되었다. 네이선은 다방면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그 여자는 끝내 자신의 눈앞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네이선은 굿 리치의 말을, 즉 굿 리치가 죽음을 미리 예견할 수 있는 메신저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며 주변의 인물들과 화해를 시도한다. 아내와의 화해를 시도했고, 장인과 장모와의 화해도 시도했다. 어머니에 대한 불효에 대해서도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네이선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아내의 머리에 어린 하얀 빛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신이 메신저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 모든 행동들이 메신저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굿 리치는 네이선이 메신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네이선을 찾았지만 네이선은 자신의 죽음을 알리러 온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메신저의 역할은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인생을 정리하고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니 네이선의 역할은 충분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메신저가 되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주어지는 임무가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니 메신저가 되는 대가는 참으로 참혹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은 모두가 하루하루를 살 뿐이 아닌가? 어쩌면 우리 모두는 메신저일지도 모른다. 내일은 기약할 수 없는 세월이다. 오늘은 후회하기 위한 내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의미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후회스러운 시간으로 만들었을 때 어제의 결과가 지금이 될 것이고, 지금의 후회는 내일 부딪혀야하는 지금이다.
한 순간 참지 못하여 영원히 소원해지는 관계.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자존심이라든지, 자신이 소속해 있는 집단을 대변한다는 이유 때문에 던져버리지 못하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다 가게 되는 곳이 존재한다면 모두 만나는 그곳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젊은 날의 숲/김훈 (0) | 2011.03.05 |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0) | 2011.01.31 |
산에는 꽃이 피네/법정 (0) | 2010.09.16 |
은교/박범신 (0) | 2010.08.02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0) | 2010.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