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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고령화 가족 / 천명관

by 1004들꽃 2012. 9. 24.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소설이긴 하지만 황당한 이야기를 황당하게 끌고 간다고나 할까.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과 함께 가는 듯하여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들은 인간적이다. “나의 삼촌 부루스리”에서도 좌충우돌 파란만장한 삶을 이끌고 가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그 삶은 아름답기조차 했다.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나가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고령화 가족에서는 오십이 다 된 실패한 영화감독이 칠순을 넘긴 엄마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집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그 보상금으로 마련했다. 엄마의 집에는 이복형이 먼저 진을 치고 있다. 그는 몸무게 백이십 킬로그램의 거구로 감옥에 다섯 번이나 갔다 온 깡패 출신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싸움에는 추종할 자가 없었다. 항상 벽돌을 가방에 넣고 다니기 때문에 오함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문제는 어느 날 소파에서 잠들었다 깨어보니 여중학생으로 보이는 녀석이 텔레비전을 보며 배를 잡고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여동생이 이혼하고 딸과 함께 엄마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엄마와 삼남매와 조카, 다섯 명이 그 좁은 빌라에서 함께 살아가며 겪는 이야기다.


술집을 경영하며 돈을 벌고 있는 여동생은 종종 바람을 피웠는데 심지어 아르바이트하는 학생과 관계를 맺는 바람에 이혼 당했다. 술집 경영으로 번 돈으로 이들은 대부분의 생계를 이어갔고, 영화감독인 “나”는 조카의 용돈을 갈취하여 술 마시고 담배 사서 피우는 사람이다.


어느 날 조카가 가출을 하고 조카를 찾기 위해 대구로 가려던 중 문 앞에 조카가 나타난다. 그 뒤에는 오함마가 서 있다. 성인게임장의 바지사장을 해주고 대신 감옥에 가는 것을 조건으로 조직을 동원해 조카를 찾은 것이다. 이후 여동생은 착실한 남자와 사귀게 되고 세 번째 결혼에 성공한다. 엄마는 어릴 때 동네에서 전파상을 하던 구 씨와 바람이 나 집을 나갔는데 구 씨가 밀수를 하다 잡혀 감옥으로 간 사이에 아버지가 엄마를 찾아 데려온다. 엄마의 등에는 갓난애가 하나 업혀있었다. 그 아이가 지금의 여동생이다. 구 씨는 그 여동생의 결혼식에 신부의 손을 잡고 들어간다.


바지사장으로 대신 감옥에 가기로 했던 오함마는 성인게임장을 제3자에게 넘기고 동네에서 미용실을 하던 여자와 함께 외국으로 도망간다. 그 덕분에 “나”는 죽도록 얻어맞는다. 죽기 직전에 걸려온 전화. 오래전에 사귀다 캐나다로 이민 간 후배 캐서린으로부터다. 그렇게 죽음 직전에서 살아나 캐서린의 오피스텔에서 살아간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고 사랑하고 잠자는 일밖엔 할 일이 없다. 그 사이사이에 충무로에서 애로영화 다섯 편을 찍었다.


엄마도 구 씨와 함께 살아간다. 엄마 집에는 이제 엄마와 구 씨만 남았다. 그렇게 모두 떠난 것이다. 엄마는 아이들이 떠날 때도 다시 들어왔을 때도 그리고 다시 떠날 때도 아무 말이 없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끼니를 해결해 주기 위해 분주하게 일한다. 마치 앞으로 있을 전투에 참여하기 위한 힘을 비축해주기 위한 듯 그렇게 일상인 듯 자연스럽다. 그런 엄마가 세상을 떠난다. 마치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사한 완성된 문장은 무엇일까? 그것을 말해 줄 사람은 이제 어느 곳에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이런 문장이 아니었을까?
“엄마!”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엄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엄마도 항상 자식들 곁에서 자식들은 걱정한다. 그것은 사랑이겠지. 자신이 해 준 음식을 볼이 미어터지도록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정작 자신은 숟가락을 놓고 자식들의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본다. 어릴 때도 그랬고 오십이 넘은 자식들을 보면서도 그렇다. 그 모든 것은 “엄마!”라는 문장 속에 녹아있다.


 

-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 질 모양이다. 공효진이 참여할 예정이란다. 소설 속의 미연이라는 캐릭터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예감이다. 아니면 캐서린 역도 잘 어울릴 것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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