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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종이여자/ 기욤 뮈소

by 1004들꽃 2012. 9. 12.

기욤 뮈소의 책은 만화 같은 이야기, 무거운 책을 읽고난 후 손에 쉽게 잡히는 책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그러기 때문에 더욱 빨려드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은 글쓰기를 늘 곁에 두고 싶어하는 마음과 상통한다는 느낌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현실을 염두에 두고 거울을 비추듯 바라보는 입장이고, 또한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입장에서 보면 기욤 뮈소의 책들은 또한 현실과 동떨어져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이번의 책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다. 부수적인 일들이 배경으로 깔리지만 어쨌든 책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여러 가지 사건들과 연계시켜 나간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시를 쓰고 나면 주제와 소재는 고갈되고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은유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지난 일들을 재구성한다. 그러면서 시는 은유여야만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물 위를 걸어 다니고, 몸속의 피가 다 빠져나와 얼굴이 하얗게 변해버린 자가 구름 위로 떠오른다. 없던 길도 만들어 내고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의견도 묻지 않고 내 주관만으로 그를 묘사한다. 미친짓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 미친짓이 재미있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미친짓을 정당화하고 미친그룹을 만들어 그들끼리 미친짓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디까지 미쳐야 하는 것일까.


<천사3부작>이라는 신작소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톰은 2권을 마친 시점에서 커티스 음대 출신인 피아니스트 오로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얼마가지 않아 깨지게 된다. 충격에 빠진 톰은 약물에 빠져 두문불출 집에만 처박혀 있게 된다. 그의 친구 밀로와 캐롤은 그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백방으로 힘쓴다. 그들은 어린시절을 함께 보내며 쌓은 우정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밀로의 잘못으로 톰이 이루어 놓은 부와 재산은 물거품이되고 만다. 약물중독으로 출판사와 약속한 <천사3부작>의 제3권은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 톰. 그때 톰의 앞에 나타난 것은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 빌리.


<천사 3부작>제2권이 출판사의 실수로 266페이지에서 중간에 뚝 끊어지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일어난다. 책을 주문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 출판사는 급하게 인쇄를 하느라 266페이지 이후로 백지가 나왔다는 것을 모른 채 책은 미국전역으로 나가고 이를 알게 된 출판사에서 책을 회수하게 된다. 하지만 999,999권만 회수되고 한 권은 남아있다.


그 266페이지에서 뚝 떨어져 톰의 집에 나타난 종이여자 빌리.
종이여자 빌리와의 사랑을 통해 드디어 톰은 <천사3부작>의 제3권 집필에 들어간다. 현실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없는 빌리를 다시 소설 속으로 돌려보내야만 빌리를 살릴 수 있다. 3권의 내용은 빌리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3권을 끝내는 날. 톰은 빌리와의 마지막 밤을 맞는다. 수면제를 탄 술을 마시고 의식을 잃어가던 중 빌리는 출판사에 <천사3부작> 제3권 원고를 출판사로 보낸다. 마지막 한 권 남은 책은 벽난로에 던져지고 톰은 의식을 잃는다. 다음날 종이여자 빌리는 현실의 세계에서 사라지고 없다.


톰의 친구 캐롤의 이야기로 가보자.
양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캐롤의 슬픈 이야기를 들은 톰은 LA흑인폭동이 일어나던 날, 캐롤의 양아버지를 찾아가 총으로 죽이고 캐롤을 악몽에서 구원해 낸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밀로는 톰과 캐롤에 대한 의심을 풀고 캐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밀로가 친한 친구 톰과 캐롤을 의심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했지만 진실을 알게 된 밀로는 사랑의 힘에 의해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톰은 정작 오로르와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빌리'를 살리기 위해서 소설을 써 나가면서 자신이 '빌리'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녀를 통하여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된다.


특이한 것은 세상에 한 권밖에 남지 않은 책 2권의 이동경로에 한국의 박이슬이라는 여대생과 이화여대가 등장한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소설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한국인을 소설 속의 인물로 등장시킨 일이 있다.


마지막 부분은 반전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SF적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친구를 구원하기 위한 밀로의 음모라는 것. 종이여자는 릴리라는 현실세계의 배우지망생으로 15,000달러를 받고 소설 속의 빌리 역할을 연기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부분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과연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이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와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내용의 전개와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관없이 두 소설의 주제는 <사랑>이다.


사랑. 과연 우리는 얼마나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영화나 소설 속에서는 극적인 만남을 설정하고 그 만남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현실 속에서는 얼마나 그러한 극적인 장면들이 개개인에게 도래할 것인가. 반대로 생각하여 사람들은 항상 극적인 장면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 상황들이 너무 일상적이라 무디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소설의 줄거리를 나열하는 일 자체가 진부하지만 내용을 요약해 놓았을 때 그 소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가 수월하다. 정작 소설을 읽고난 후의 감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아!”라는 글자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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