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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흡연자들을 위한 대변

by 1004들꽃 2008. 5. 28.

흡연자들을 위한 대변


요즈음 관공서나 회사 사무실 등의 바깥 구석진 곳에 보면 으레 초라한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는 중년의 남자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 따지고 보면 국가에 충성(?)한 나머지 세금을 바치고 담배를 피우는 것밖에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요즈음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 금연이니 폐암이니 간접흡연이니 백해무익이니 뭐니 하면서 흡연자들을 거리로 내쫓고 있다. 굳이 죄라고 한다면 이미 담배가 생산되고 판매되고 있는 20세기에 태어나 호기심이든 의무감을 느꼈든 담배를 피우게 된 죄밖에 없다. 건강에 해가된다는 이유로 나 자신도 한 때 담배 피우기를 쉰 적이 있다. 그 기간 동안에 담배를 피울 때보다 얼굴이 좋아졌다느니 건강해 보인다느니 하는 말들을 듣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다만 뭔가를 참고 있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을 느꼈을 뿐이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들은 단지, 담배를 피우다가 피우지 않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런 식의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 증거로 목욕탕을 막 나와 담배연기가 가신 상태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 물론 상대방은 내가 목욕탕에 갔다 온 사실을 모른다. -
“야 얼굴 좋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나도
“그래? 요즈음 담배를 끊었더니…….”
라고 응수를 하는데, 그러면 상대방에게서 나오는 이야기는 교과서처럼 정해져 있다.
“그럼 그렇지!”
속으로 나는 병신이 따로 없구나 하고 생각해 버리고 만다.
물론 나는 여기서 90먹은 할머니도 줄담배를 피우면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사회가 의도적으로 흡연자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이데올로기의 문제 이상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회적인 차별을 없애고 함께 가는 사회를 목표로 많은 개혁정책을 펴 나가면서 하나의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자진납세를 하면서도 흡연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게 하여 흡연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시키고 그 이면에서 교묘하게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해 나가는, 즉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고 거부할 수 없는 물결을 만들어 그 사회에서 정당하게 받아들여지게 하는 고도의 술수가 아닌가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흡연자들도 정당한 권리를 찾아야한다. 장애인들을 위한 관공서 문턱 없애기, “여성”휴게실 만들기와 같이 흡연자들만을 위한 휴게실도 설치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좀체 들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관공서 건물 내의 어느 구역에서든 흡연이 금지된 지 오래고 그 범위는 점점 확대되어 나가고 있으니 흡연자들이 설 위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사회에서 천시되고 있는 담배의 가격도 그와 발맞추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으니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가.
흡연자들에게 죄의식을 심는 것에만 주력하지 말고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담배소비세를 징수하여 어디에 쓰는지는 모르지만 흡연자들을 위하여 쓰여지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다. 그동안 흡연자들은 올라가는 담배값을 충당하기 위하여 쌈짓돈을 풀어야했고 비흡연자들을 위하여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비흡연자들은 흡연자들의 쌈짓돈을 갈취하여 그들의 편의를 도모하였던 것이다. 지역사회의 편의시설이나 사회기반시설 등에 담배소비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하겠는가?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침을 삼키며 담배를 참고 있는 괴롭다기보다 차라리 서글픔으로 승화되어 버린 흡연자들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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