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와의 말없는 대화의 시간이다. 마약처럼 취하다보면 문장 하나하나가 오래전에 만났던 사람처럼 친근해지기 까지 한다. 이번에 낸 시집은 도시를 떠나 산속에서 몇 년을 지내며 써낸 시라는 데서 선뜻 시집을 구입하게 되었다. 시집의 해석을 하고자한다면 뒷부분에 있는 해설을 보면 될 것이고 독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읽으면서 밑줄 그은 부분을 옮겨 적는 것일 게다.
"내 안에 시인이 사라진다는 건 마지막까지/남아 있던 최후의 인간이 사라지는 거라는데/...... 나는 어떤 이를 내 가슴속에 데려다 놓은 것일까"(내 안의 시인)
"사람답게 사는 빛의 길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그러나 사람답게 사는 일과 같은 굵기로 꼬인/번뇌의 억센 동아줄에 몸이 묶여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모순과 싸워 이긴 날들의 업적과/똑같은 크기로 쌓이는 이 업은 또 어이해야 합니까/....... 언제쯤 무명의 밤이 지나고/ ....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될까요" (미황사 편지)
찾고자 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 생의 모습들은 보이지 않는 그 어느 곳, 적멸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의 공통적인 본능은 아닌가.
"생의 벼랑이고 길인 날들 앞에 서서/한순간에 벼랑을 만나고 한순간에/길에 들 수 있는 백척간두에 서서/얼마나 더 주저하고 타태해야 한단 말인가"(구절양장) "숲이 내 정신의 일부가 되어 들어오고/그렇게 함께 숨쉬며 살아 있는 것이다"(숲의 식구)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산경)
"언제고 고장날 수 있는 그의 생애를/고쳐서 다시 쓸 줄 알 것 같은 그녀가/바람에 몸을 흔들면 산박하 냄새가 날아오곤 하였다"(구두 수선집)
그러나 아무리 가파른 산도/길을 지니지 않은 산은 없다는 걸/이제는 안다(피반령)
한 달 내내 한 편의 시를 가지고 씨름하는 모습은 글쓰기의 자세를 가르쳐준다. 쉽게 씌어진 시는 결코 쉽게 쓰지 않았다. 쉽게 읽히기 위하여 작가는 단어들 사이에서 갈등하였을 것이고 어떤 날은 “잘못 쓸 글들을 태우며” 하루를 보내는 날도 많았을 것이다. 작가가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에 박수를 치기에 앞서 작가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우리들 자신을 먼저 다듬어야 할 것 같다.
재
편지 한두 통을 쓰고 나면 한나절이 가고
피리 소리를 듣는 동안 노을이 환하게 물들어오고
하루가 피리 소리처럼 가늘고 간결하게 저물었다
장작불을 뒤적이는 동안 밤도 겨울과 함께 깊어가고
잘못 쓴 글들을 태우며 한순간 재가 되는
헛된 생각의 연기를 한참씩 바라보는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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