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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한젬마와 함께하는 우리국토 미술기행

by 1004들꽃 2009. 2. 24.

무식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학창시절에 한국의 그림보다 서양 작가의 그림을 더 많이 보았고 시험문제에도 많이 출제된 까닭도 한 몫 한 셈이다. 그만큼 우리 문화에 대한 애착이나 알려고 하는 노력이 없었던 탓이다. 솔직히 신사임당, 김정희, 이중섭 등 자주 들먹이는 분들을 빼 놓으면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가들은 처음 대하는 화가들이다. 그들을 몰랐다는 것보다 더 부끄럽게 하는 것은 그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사실상 그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방법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 변명 아닌 변명이다.

일전에 그림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볼까 싶어 인터넷 서적을 뒤지다가 발견한 최영미의 ‘시대의 우울과’과 ‘화가의 우연한 시선’을 읽게 되었다. 그동안 시험문제를 풀기 위한 그림에의 접근에서 벗어나 그림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캐기 위한 접근이었다. 참으로 환상적이었고 그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한 색다른 경험이 되기도 하였다.

한국의 그림에 대해서는 국사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그린 수묵화나 서민들의 모습을 그린 민화 등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했었다. 가족 중에도 화가가 한 분 계시지만 그러한 사실과는 별개로 그리스, 로마시대의 서양인들이 그린 그림 일색인 미술교과서 덕분으로 어쩌면 나를 포함하여 우리 학생들로부터 의도적인 외면을 당해 왔던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양이라면 왠지 좋을 것 같았던 기분 말이다. 바보처럼.

새로운 문화예술의 해로 정했던 지난 2000년을 전후로 각 지역별 예술촌이나 미술관 등이 새롭게 개관되면서 그동안 도외시되었던 미술이나 문학 등 예술분야가 그나마 일반 서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애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예술인들의 생가를 복원하거나 흔적을 토대로 기념관을 세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지적하듯이 문화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 등지에서의 예술가의 생가 보존은 예술가에 대한 예우를 위한다는 차원을 넘어 “작가의 생가는 예술로 승화된 인간을 보여”주며 “가슴으로 한 사람의 예술인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어떤 예술인에 대하여 조명해 보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생가나 고향의 정경을 접해 보지 않고는 어딘가 2프로 부족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생가나 발자취가 보존되어 있지 않은 우리의 대지에서 태어난 화가들의 발자취를 찾아내기란 참으로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땅에는 이인성이라는 천재화가도 있었고, 묵음(黙音)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그의 소리 없는 강렬한 외침으로 메시지를 던져준 운보 김기창이 있었고, 한국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릴 정도로 탁월한 인체묘사의 대가 이쾌대도 있었으며, 이 책을 쓴 한젬마가 가장 닮고 싶어 하는 현모양처이자 동시에 위대한 예술가 신사임당도 있었다.

그들의 삶에 고난이 있었지만 외국의 작가들도 그러한 부분에서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현재가 아닐까. 그들의 작품을 통하여 지나온 역사를 재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며 한국 미술이 나아갈 방향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고, 그만큼 다수의 서민들에게도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환기의 추상화 『점화』를 보고 “점, 선, 면의 구조가 더욱 압축된 점만의 세계로 이행하게 된다. 그리하여 화폭 전체가 점으로만 가득 채워지는 전면점화(全面點畵)의 우주론적 세계에 도달한다.”는 이야기를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글쓰기 작업을 하다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 뿌리치지 못하여 부탁에 의해서 남의 글을 대신 써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한국적 인상주의 대표화가 오지호의 모습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된다.

“창씨개명을 끝까지 반대하고, 일제 군국주의에 동조하는 전쟁 기록화를 끝내 그리지 않았던 일 등은 그가 일신의 안위를 구하지 않는 양심적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화가이기 이전에 지식인이었고 철학자였으며 민족의 지도자였던 것이다. 어설픈 지식을 믿고 그것이 진리인양 떠들고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에 굴종하는 대필가들은 무엇인가?

“왜 이런 평가는 늘상 당대가 아니라 세월이 흐른 후에야 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이 앞서 나가는 자의 숙명인가.”

서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알지만 조선의 공재 윤두서를

책속에는 화가의 체취를 따라갈 수 있는 상세한 약도가 소개되어 있다. 이번 여름휴가는 우리 국토가 배출한 화가의 체취를 찾아 미술기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