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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풍경

평행선

by 1004들꽃 2020. 8. 6.

평행선


아이를 마산역에 태워다 주고
동쪽과 서쪽으로 뻗어있는 철로를 바라다보았다
녹슨 철로는 기차 바퀴가 닿는 곳만 반질반질 빛나고 있었다
연결된 길을 따라 기차는 시간을 다투며 지나갈 것이다
서로 만날 수 없는 운명을 말할 때 기찻길을 이야기하곤 했다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김없이 돌아오면서 만나지 못하는 비애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늙어버린 두 눈에는
두 개의 선이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영원히 만날 것 같지 않은 길도
세월이 흐르면 만나게 되는 것일까
아이는 끝없는 평행선에 얹혀서 가고 또 돌아오지만
가야 할 시간을 품고 돌아오는 것이다
아득히 먼 저쪽에서는
선명했던 두 개의 선도 희미해져 버린다
희미해진 두 선은 뭉개져서 선이 아닌 하나의 점이 되어 버린다
아이가 얹혀서 가는 평행선도 기찻길과 포개져서
어느 길이 내가 보는 길인지 분간할 수 없다
점을 넘어서 가는 기차도
점과 포개지는 아이도
주어진 삶을 함께 지고 가는데
평행선 위에 남겨진 삶은 기어이 허상으로 남고
희미해져서 점이 되어버린 삶은 현실이 되어버리는데
아무래도 둘은 별개의 일처럼 보인다
아무리 걸어도 도달하지 못하는 점도
늙은이의 눈은 도달할 수 있다고 평행선은 말하고 있다
살아가는 우리가 평행선 위를 아슬아슬 걸으며 손을 잡을 뿐이지만
손을 잡지 않아도 만나는 시점이 있다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는 이미 만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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