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최영미시집 <서른,잔치는 끝났다> (개정판) 창비시선 121

by 1004들꽃 2016. 8. 17.

최영미시집 <서른,잔치는 끝났다> (개정판) 창비시선 121

출간일 : 2015년 10월 30일

ISBN : 9788936427269

페이지수 : 128 / 판형 : 127*210

정기구독회원가 : 7,200원 (400P 적립) / 정가 : 8,000원

 

 

책 소개

지난 20여년간 청춘을 위로해온 ‘서른살의 필독서’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하는 사랑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 볼 틈 없이/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잊는 것 또한 그렇게/순간이면 좋겠네//멀리서 웃는 그대여/산 넘어가는 그대여//꽃이/지는 건 쉬워도/잊는 건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선운사에서」 전문)

 

1992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한 이후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영미 시인의 기념비적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시대를 응시하는 처절하고도 뜨거운 언어로 한국 문단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이 시집은 지금껏 5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내겐 축복이자 저주이며 끝내 나의 운명이 되어버린 시집을 새로이 세상에 내놓”(개정판 시인의 말)으면서 시인은 세편의 시(「지하철에서 6」 「마포 뒷골목에서」 「귀거래사(1992)」)를 덜어내고 과도한 수식어를 쳐내는 등 손톱을 다듬는 마음으로 젊은 날의 시편들을 일일이 손보았다. 간결하게 정돈된 시어들은 최소한의 언어로 간결미를 뽐내며 당대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비유를 더욱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지난 이십여년간 ‘서른살의 필독서’로 청춘의 아픔과 고뇌를 다독여온 이 시집은 “어떤 싸움의 기록”(최승자, 추천사)이자 깊은 사랑의 기록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는 변했지만 “교과서가 없는 시대에 고투하는 젊은 영혼의 편력을 도시적 감수성으로 정직하게 노래”(최원식, 추천사)한 시편들이 당대를 건너온 시인의 열정과 어우러져 여전히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낮은 목소리로 사랑 노래를 즐겼다는 걸/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잔치는 끝났다/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둘 지갑을 챙기고/마침내 그도 갔지만/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리라/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서른, 잔치는 끝났다」 전문)

 

 

지난 1980년대의 암울했던 현실을 때로는 서정적이고 때로는 대담하게 그려낸 시편들로 가득한 이 시집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을 간직하고 있다. 시인은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 자기와의 싸움”(김용택, 발문) 속에서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혁명이 진부해졌다/사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랑이 진부해졌다”(「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라고 말하지만 실상 그가 열망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시인이 진정으로 꿈꾸는 것은 이를테면 “커피를 끓어넘치게 하고/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고/촛불을 춤추게 하는”(「사랑의 힘」) ‘사랑의 혁명’이다.

한편 시인은 조탁된 언어로 깊고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제 “다듬을수록 날이 서던 상처”(「다시 찾은 봄」)들을 떠나보내고 “생각이 미쳐 시가 되고 시가 미쳐 사랑이 될 때까지”(「생각이 미쳐 시가 되고……」)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되새기며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딛고 일어서 “말갛게 돋아나는 장미빛 투명으로/내일을 시작하리라”(「대청소」)는 다짐을 가다듬는다. 그것이 곧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끝끝내, 누구의 무엇도 아니었던”(「나의 대학」)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하는 사랑 아니겠는가. 이는 축복이 아니라 도리어 재앙이었을지도 모를 청춘의 자유 속에서 진짜로 싸워본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삶은 여전히 처절한 싸움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과하는 젊은 영혼은 이 시집 안에 아직 고스란히 살아 있다.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가을에는」 부분)

 

그간 많은 작품에서 새로운 언어로 ‘서른’을 수식하고 정의 내리려고 하지만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주는 상징성과 강렬함을 능가할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금 이 시대의 서른을 살아내는 청춘에게, 젊은 시절의 자기 삶의 열정을 치열하게 뒤돌아볼 줄 아는 당신에게, 여전히 서른을 빛나게 할 이 시집을 선사한다.

 

손톱을 다듬은 듯 정돈된 시들을 훑어보며 나는 안도했다.

 

이제 눈을 감아도 되겠네.

마흔이 지나 전업시인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를 깨닫고 많이 후회했다. 내가 왜 시인이 되었던고. 날마다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다달이 월급봉투를 받는 이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처럼 사는 데 서툴고 인간관계에 어두운 사람이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건 첫 시집 덕이다. (…) 내겐 축복이자 저주이며 끝내 나의 운명이 되어버린 시집을 새로이 세상에 내놓는다. 21년이 지나 이제야 보인다. 내가 왜 그 말을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내가 왜 헤매었는지.

나 혼자 떠돈 게 아니었다. 나 혼자 끄적인 시가 아니었다. 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새겨진 언어의 파편들은 시대의 기록이다. 함께 겪은 그대들의 열망과 좌절이, 변화한 사회에 안착하지 못한 세대의 파산한 꿈이 내 몸을 빌려 나온 것이다.(‘개정판 시인의 말’ 중에서)

 

[추천사]

 

나는 『창작과비평』에 이 시인을 “교과서가 없는 시대에 고투하는 젊은 영혼의 편력을 도시적 감수성으로 정직하게 노래하고 있는 신인”이라고 소개했었다. 그녀의 첫 시집을 교정지 상태에서 읽어나가면서 나는, 당분간은 그 무엇이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는 ‘한 시인’이 태어났음을 실감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독자들에게 쉽게 투과되는 시인에게서 새로운 시대의 예감은 감지되지 않는 법이거늘, 바라건대 그 불투과성(不透過性)이 우리 시의 내일을 여는 “첫번째 사과의 서러운 이빨 자국으로” 전환되는 기적을 목격할 수 있게 되기를!- 최원식 문학평론가

 

최영미의 시는 얼핏 보기에 도발적이다. 사람을 적이 당황스럽게 하면서, 그러나 그의 시를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이 유혹의 빛은 삶을 지탱시켜주는 중요한 어떤 것, 이념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하는 것이 사라져버린 자리를 비춰주고는 문득 암전되고 만다. 나이 서른살에 “잔치는 끝났다”고 말하는 이 시집은 이념의 대홍수 이후 그것의 범람에 가담했던 세대의 기록으로 기억되겠지만, 시가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상처가 더이상 명예가 아닌 때에 삶에의 자존심마저 훑어가버리고 없는,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 그 황폐한 곳에 스스로 거주하고자 하는 시인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자가 이 시대에 또 있다니(!) 반갑다.- 황지우 시인

 

최영미는 여성시의 다양성이라는 공간 확장에 개성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개성적이라는 것은 최영미가 청춘과 운동, 사랑과 혁명 같은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자신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질퍽하게 하나로 동화시켜가는 궤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궤적에는 불가피하게 싸움들이 끼어든다. 그 싸움의 대상들은 부조리한 사회일 수도 있고, 그 부조리한 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것이든 권력을 쥐고 있는 남성 전반일 수도 있다. 그의 시들은 어쩌면 어떤 싸움의 기록이다. 그는 그 싸움의 상처들로 만들어진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다(“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그래도 그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누더기 옷을 통해, 그 투명한 알몸, 혹은 알몸의 투명성의 아름다움이 내비치기 때문이다. 싸움으로 질척거릴수록 더욱 투명해지는 아름다움이.- 최승자 시인

 

목차

 

제1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선운사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살아남은 자의 배고픔

혼자라는 건

속초에서

그에게

마지막 섹스의 추억

먼저, 그것이

위험한 여름

가을에는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어떤 족보

어떤 사기

 

제2부 나의 대학

과일가게에서

목욕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어떤 게릴라

우리 집

사는 이유

슬픈 까페의 노래

돌려다오

대청소

다시 찾은 봄

북한산에 첫눈 오던 날

폭풍주의보

인생

나의 대학

 

제3부 지하철에서

지하철에서 1

지하철에서 2

지하철에서 3

지하철에서 4

지하철에서 5

새들은 아직도……

짝사랑

Personal Computer

차(茶)와 동정(同情)

24시간 편의점

라디오 뉴스

관록 있는 구두의 밤 산책

 

제4부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

생각이 미쳐 시가 되고……

꿈속의 꿈

영수증

사랑의 힘

어쩌자고

또다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자본론

한 남자를 잊는다는 건

내 속의 가을

담배에 대하여

어떤 윤회(輪廻)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

시(詩)

 

발문|김용택

 

[저자 소개]


최영미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이미 뜨거운 것들』,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청동정원』, 산문집 『시대의 우울: 최영미의 유럽일기』 『화가의 우연한 시선』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

 

개정판을 내니 고치고 싶은 곳을 고쳐도 된다는 편집자의 전화를 받고 무척 기뻤다. 얼마 만인가.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로 등단하고 1994년에 첫 시집을 펴낸 뒤 어언 21년이 흘렀다. 백수이던 내가 드디어 ‘시인’이 되었다고 감격해 여기저기 전화하고 흥분으로 잠을 못 이루던 날들. 휘청휘청 돌아다니던 무모한 청춘. 일산으로 속초로 춘천으로 다시 서울로 집을 열번쯤 옮기고 나니 오십이 되었다.

오랜만에 옛날 시들을 꼼꼼히 보았다.서른 무렵의 나를 만났다. 아, 내가 그때 그랬었군. 사랑과 분노, 욕망과 상처가 파릇파릇 살아 있던 과거와 맞닥뜨리며 낯이 뜨거워 어디 숨고 싶었다. 내가 미쳤지. 어쩜 이런 표현을 썼지. 이런 말을 글로 박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참, 철이 없었구나 내가. 「Personal Computer」에 쏟아지던 세간의 오해가 지겨워, ‘문제의’ 마지막 행을 삭제하고 싶었다. 한 행을 없애도 시가 될까. 다 들어내긴 아까우니 좀더 순한 표현으로 바꿀까. 고민 끝에 가까운 이들에게 자문을 구했다.“그걸 왜 지워? 그냥 두세요.”

지인들의 말에 힘을 얻어 ‘과격한’ 표현들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아아 컴―퓨―터와……” 말고도 눈에 거슬리는 시구들이 허다했다. 서른 무렵의 나는 할 말이 많았다. 피가 끓던 때라 지금처럼 냉정하게 언어를 다듬을 여유가 없어, 때로 수식이 지나쳤다.

쇄를 거듭할 때 약간의 수정을 시도했지만, 판을 바꾸지 않고는 큰 틀에서 수정이 불가능했다. 무덤에 웃자란 잡초를 다 뽑지 않고 묘지를 내려온 뒤처럼 머리 한 귀퉁이가 찜찜했는데, 이번 기회에 말끔히 정리하고 싶었다. 세편의 시를 버리고, 과도한 수식어를 쳐냈다. 옛날의 나를 고치려 덤비다 멈추었다. 마치 선생이 학생의 습작을 대하듯, 무자비하게 칼질을 하고픈 충동을 참으며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지금 보면 엉성하고 어설프더라도, 새로 가필하지는 말자. 뺄 건 빼더라도, 덧붙이지는 말자. 새로 멋있게 시를 꾸미지 말자. 지난 삶의 흔적을 고치는 성형수술의 유혹을 물리치고 웃자란 잡초처럼 불필요한 중언부언과 부사들을 잘라냈다. 동사와 명사는 거의 손대지 않았다.

손톱을 다듬은 듯 정돈된 시들을 훑어보며 나는 안도했다.이제 눈을 감아도 되겠네.마흔이 지나 전업시인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를 깨닫고 많이 후회했다. 내가 왜 시인이 되었던고. 날마다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다달이 월급봉투를 받는 이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처럼 사는 데 서툴고 인간관계에 어두운 사람이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건 첫 시집 덕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이름을 얻어 글을 팔아 먹고사는 생활인이 되었으니.내겐 축복이자 저주이며 끝내 나의 운명이 되어버린 시집을 새로이 세상에 내놓는다. 21년이 지나 이제야 보인다. 내가 왜 그 말을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내가 왜 헤매었는지.나 혼자 떠돈 게 아니었다. 나 혼자 끄적인 시가 아니었다. 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새겨진 언어의 파편들은 시대의 기록이다. 함께 겪은 그대들의 열망과 좌절이, 변화한 사회에 안착하지 못한 세대의 파산한 꿈이 내 몸을 빌려 나온 것이다. 장편소설 『청동정원』을 끝내고 나는 그 시절을 그만 돌아보기로 했다. 스마트폰과 댓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을 붙들고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어리둥절해할 젊은이들과 말을 섞고 싶은 욕망이 나를 움직여 책상에 앉았다.

때를 놓친 감사의 말을 부디 받아주시길. 내 시의 최초의 독자였던 벗들, 한미선과 이영준 선생님, 아름다운 발문과 추천사로 후배를 격려해준 김용택 황지우 최승자 최원식 선생님. 내 시에서 위안을 얻었다며 애틋한 편지를 보낸 독자들, 아직도 시를 읽는 사람들, 편견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준 친구들을 기억하며, 오래된 시집을 산뜻하게 포장해준 편집부의 노고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불꽃이 꺼진 뒤에도 살아야 하니막막하지만 더듬거리며 여기서 다시 시작하련다. 

2015년 10월

최영미

 

                                                              

'자유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일대 해수욕장(2017-9-13)  (0) 2017.09.13
무진기행  (0) 2017.01.11
대한민국의 시원  (0) 2016.06.03
우연히 발견한 옛날 사진  (0) 2016.05.27
계영배(戒盈杯)  (0) 2016.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