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가있는풍경

종소리

by 1004들꽃 2022. 5. 23.

종소리


지리산 법계사에 올라 지리산법계사종을 울린다
종소리는 바람 소리에 섞여서 적멸보궁과 극락전 지붕을 훑고 지나 삼층석탑에 잠시 머물렀다 나무와 바위에 스며들어 기약도 없는 나날들을 언제까지나 기다리게 될 것이다
목적도 대상도 없는 기다림이란 얼마나 좋은가
종도 종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평생 사람이 쳐 주길 기다리지는 않을 것인데
종과 당목은 엄지와 검지를 벌린 만큼의 간격뿐이라
이 깊은 산중에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종은 저절로 쳐질 것 같다
종이 흔들려 쳐지고
당목이 흔들려 쳐지고
종과 당목이 서로 흔들려 쳐질 것이다

종소리는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물겠지만 내 속에도 스며들어서 나는 종소리를 안고 산을 내려왔다 울리고 울리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지리산법계사종소리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을 치고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하늘에 오를 듯 훨훨 날아갈 것 같다
종소리를 안고 힘겹게 걸어서 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종소리에 실려 날아서 가는 것이다
망바위를 지나 칼바위를 지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으로 날아서 가는 것이다

 

'시가있는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리  (0) 2022.06.09
생일  (0) 2022.06.05
세상을 쳐다보다가 문득  (0) 2022.05.19
시 쓰는 계절  (0) 2022.05.17
새벽  (0) 2022.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