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지리산 법계사에 올라 지리산법계사종을 울린다
종소리는 바람 소리에 섞여서 적멸보궁과 극락전 지붕을 훑고 지나 삼층석탑에 잠시 머물렀다 나무와 바위에 스며들어 기약도 없는 나날들을 언제까지나 기다리게 될 것이다
목적도 대상도 없는 기다림이란 얼마나 좋은가
종도 종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평생 사람이 쳐 주길 기다리지는 않을 것인데
종과 당목은 엄지와 검지를 벌린 만큼의 간격뿐이라
이 깊은 산중에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종은 저절로 쳐질 것 같다
종이 흔들려 쳐지고
당목이 흔들려 쳐지고
종과 당목이 서로 흔들려 쳐질 것이다
종소리는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물겠지만 내 속에도 스며들어서 나는 종소리를 안고 산을 내려왔다 울리고 울리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지리산법계사종소리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종을 치고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하늘에 오를 듯 훨훨 날아갈 것 같다
종소리를 안고 힘겹게 걸어서 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종소리에 실려 날아서 가는 것이다
망바위를 지나 칼바위를 지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으로 날아서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