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내리는 풍경
지루한 가뭄 끝에 쓰러져가던 풀잎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말라붙은 풀씨들이 뿌리를 내리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살아가는 것도 장맛비를 만나는 것과 같아서
다가온 행복을 만져보기도 전에
흘려보내는 날을 맞이할 것이다
가뭄으로 애태웠던 날들은 잊혀져가고
감당할 수 없는 비를 맞으며
속수무책으로 서 있을 뿐이다
다시 구름이 걷히고
무더운 하늘 아래에서
한줄기 비를 그리워하겠지만
지나가 버린 장맛비는 추억으로만
남을 뿐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제멋대로 자란 풀들을 베어내면서
내 속에 무성하게 자란 게으름도 베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