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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응급실

by 1004들꽃 2008. 5. 28.

응급실

 

 

  2003년 9월 17일 저녁 무렵 아들이 배가 아프다고 야단이다.
  ‘저 녀석 또 꾀병을 부리는 게 아냐’
  잠시 배를 만져주니 스스르 잠이 들었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려니 또 배가 아프단다. 내일 학교 가기가 싫어서 배가 아픈가? 이번엔 배를 만져 주어도 아픔이 덜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들 녀석은 추석연휴가 끝나고 9월 15일 학교에 갔다 집으로 돌아와 오후 세시쯤부터 배가 아파 토했단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도 토하고, 그날은 밤새 배가 아파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다음날 의령에 있는 모병원에 갔더니 편도가 부었다면서 감기라고 했단다. 아이들은 몸에 열이 있으면 곧잘 토한다고 하면서. 그리곤 장황하게 5분이 넘도록 설명을 하더란다. 감기약 처방 덕분인지 또 하루를 넘기기는 넘겼는데…….
  2003년 9월 17일
  제14호 태풍의 영향으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어 어수선한 가운데 피로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들은 감기약을 먹고 힘없이 누워있었다. 내일은 몸이 아파도 학교는 꼭 가야 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잠을 푹 자라고 했다. 그런데 계속 배가 아픈지 잠을 자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저녁 9시 30분가량 되었나, 급기야 병원에 가보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즉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야하나? 진주로 가는 게 빠를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진주로 향했다. 나도 모르게 자동차의 가속패달에 힘이 들어가고 아이 엄마는 좀 천천히 가라고 하고.
  어느덧 진주 입구에 도착하였는데 아들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고함을 질러대면서 왜 빨리 가지 않느냐고 재촉을 한다. 평소 병원이라든지 주사 맞는 것을 제일 싫어했던 녀석이 병원에 빨리 가자고 난리다. 병원에만 가면 아픈 게 없어질 것이란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가는 곳마다 신호등에 받쳐 브레이크를 밟아야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 울음소리는 커져만 가고, 등에는 식은땀이 나고, 평소 땀을 잘 흘리지 않는 나의 이마도 끈끈해져 갔다.
  이윽고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에 도착을 하니 언제 밥을 먹었느니 어떻게 아픈지 언제부터……. 온갖 질문과 함께 소변을 받아 오라고 하고 피를 빼고 사진을 찍어보자고 하고 그러길 한 시간 가량. 그럭저럭 12시가 다 되었다. 아이 엄마는 간호사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맹장염 같다고 했다.
  간호사가 다가오더니 외과의사에게 보여야겠다고 하고 잠시 후 통통하면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키가 작은 의사가 오더니 배를 만져보고 이곳저곳 눌러 보더니 C·T촬영도 해보고 여러 가지 다른 검사도 해 보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새벽까지 기다려야 하고 여러 증세로 보아 90%는 맹장염이 맞다고 했다. 흔히 맹장수술이라고 하지만 맹장수술이 아니고 충수돌기 제거수술이라고 하면서 수술을 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약을 먹고 가라앉히는 방법은 없냐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만 곧 재발하고 만약에 터지게 되면 복막염으로 전이가 되고 피 속으로 오물이 흡수되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
  수술을 해야 한단다. 열 살짜리 아이가.
  수술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밖에 나가 차안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리면서 수술 들어간다고 한다. 황급히 일어나 응급실로 가보니 아들은 녹색 옷으로 갈아입고 사뭇 불안한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접수창구에 뭔가를 적어야 되는데 뭐가 그리도 적을 게 많은지 한참을 적어야했다. 글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화가 날 지경에 이른다.
  아이를 도살장에 끌고 가는 기분으로 수술실로 출발했다.
  “통제구역” 이라고 씌어진 유리문 앞에 서보니 갑자기 숨이 막힌다.
  아들이 말한다.
  “수술하면 안 아프나?”
  “응! 안 아프고 잠시 잠을 자고 나면 다 될거다.”
  “빨리 끝나나?”
  “응 빨리 끝날거다.”
  “그러면 몇 초만에? …….”
  “………”
  2003년 9월 18일 2시 15분. 의사가 와서 아이를 밀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밖으로 나와 “통제구역”이라고 씌어져 있는 문만 응시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한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 수술실에 먼저 들어간 사람을 기다리는지 계속 한숨을 쉬며 앉았다 일어섰다 왔다갔다하는 사람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 진다.
  “통제구역”이라는 유리문 안에서 인기척만 나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간다. 한 시간 삼십 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왠일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통제구역”의 문이 열리고 응급실에서 아들의 배를 꾹꾹 눌어보던 의사가 ‘병철이 아빠’ 하면서 나와 프라스틱 비이커 같은 것을 가지고 나와 그곳에 담겨 있는 것을 보여 주면서 아들의 몸에서 제거된 것이라면서 설명을 한다. 충수돌기라는 것인데 원래는 가늘고 똑 같은 두께여야 하는데 끝이 주머니 모양으로 커져 있었고 염증이 생겨 터졌다고 한다. 터진 부분을 닦아내느라고 시간이 걸렸으며 깨끗이 닦아냈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한다.
  후~~
  갑자기 막혔던 숨이 쉬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회복실로 옮겨지고 녀석의 얼굴을 보기까지 두 시간이 걸렸다.
  살아가면서 가장 길었던 두 시간이었다. 새벽 다섯 시가 되어서야 입원실로 옮길 수 있었다. 간호사가 열 한 시까지 잠을 재우지 말란다. 수술한지 여섯 시간이 경과되어야 잠을 잘 수 있단다. 물은 물론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금식령”이 내려지고. 아들은 물 달라고 고함을 지르다가 안되니 펑펑 운다.
  한 시간을 울더니 스르르 잠이 들려고 한다. 잠을 재우면 안된다는 말이 생각나 계속 깨우는데 녀석은 신경질을 부린다. 그럭저럭 오전 열 시쯤 되어 걱정이 되셨는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셨다. 꼬박 밤을 새우고 나니 하늘이 노랗다.
  올해 추석절은 태풍에, 아들 수술에 정신없이 지나간다. 아이엄마는 할아버지 칠순을 앞두고 병철이가 액땜을 한 것이 아닌가 이야기한다. 그래도 순조롭게 수술이 끝났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수술이 끝난 후 펑펑 울었던 것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일부러 기침을 해야 되고 가래를 뱉어내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이루어 졌으니.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얄미울 정도로 맑다. 햇볕도 따끈하다.
  밤중에 아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손에 땀을 쥐고 운전을 하던 시간.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서류를 작성하던 떨리던 손. “통제구역” 앞에서 아이와 이별을 하고는 안절부절 하던 마음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그렇게 아픔이란 빨리도 잊혀지는가 보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쁨이나 행복보다는 불행이나 아픔이 더욱 많으며 그 사이로 가끔씩 행복이 찾아든다고들 한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믿어왔다.
  이제 그런 생각을 바꾸어야겠다. 매일 행복하면서 가끔씩 아픔이 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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