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속의 가을
아직 한여름 채 가시지도 않은 계절 앞에서
가을을 불러들인다
마음만으로도 가을을 불러와
무더운 여름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얼마나 피하고 싶었으면
더위가 한창인 날에
슬그머니 입추를 끼워 놓았을까
이제 입추인데 조금만 참으면
곡식이 익고 서리가 내리겠지
직장을 마치면 가을
가을이 참 길었으면 좋겠다
편안한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려야만 했던 세월이 다 지나고
잘 익은 열매를 먹으며 가을을 지내야 하는데
썩은 열매가 너무도 많아
먹을 것도 없는 황량한 신세도 될 것이다
여름을 잘못 보낸 까닭이다
지긋지긋한 여름은 생각하기도 싫어
비어있는 채로 지내는 것이 차라리 홀가분하다
가을이 오지 않았는데도
자꾸 가을을 생각하는 것은
여름속의 가을을 잘 견뎌내고
산뜻하게 물든 가을색을 맞이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