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83
나이가 들수록 상처 입은 곳이 많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좁아지고
상처는 훈장도 아닌데
흔적으로 남아 저절로 빛이 난다
이젠 아프지도 않아 잊고 싶은데
아팠던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흉터는
아직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손바닥을 스쳐간 악수의 흔적들은
손을 놓는 순간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데
지워지지 않는 흉터 위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 진다
때론 빗방울에 씻어도 보고
바람에 말려 보기도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내 생의 기억이라면
가슴에 고이 간직하기로 한다
흉터끼리 이어서 길을 내면
더 선명한 길이 생길까
길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고
내가 가려는 길은 자꾸만 심심해진다
혼자서 생각했던 일을
모두가 생각한다고 착각했고
새의 등을 타고 넘실거리는 말들을
글로서 내려놓을 수 있다고 착각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로
수많은 계절을 보냈는데도
말들은 아직도 침묵하지 않고
흉터 위에서 들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