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78
마음속에 시계 하나 걸어 둔다
빨리 보내고 싶은 날들은
시계바늘도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다
낙엽이 지고 흰눈이 내리면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아른거리고
시계바늘도 그대로 멈췄으면 좋겠다
시간마다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지고
풍경과 풍경 사이에서는
고독한 나그네도 길을 잃는다
나무와 바람의 관계
나뭇잎과 바람의 관계
그들을 이어주는 불확실한 관계
바람에 거는 기대는 다만 내 속에 있고
바람은 나의 기대를 상관하지 않는다
알지 못하는 너와 나의 시간은
일정하게 흘러갈 뿐인데
나에게 빨리 흘러가는 시간은 어째
너에게 더디기만 하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생겨나는 일을
나는 알지 못하고
너의 무의식에도 간섭할 수 없다
태초부터 상관없던 너와 나는
언제까지나 상관없는 관계가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춘 듯
앙상한 나뭇가지가 꿈쩍도 않는 오후
내 마음 속 시계도 잠시 멈췄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