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56
가을비 내리는 날에는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싶다
가을이 온전히 어깨에 내려 앉아
가을의 무게를 느낄 때쯤이면
나도 가을이 될 것 같아
가을비 내리는 날에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는다
혹시라도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같은 곳을 쳐다보며
나란히 걷고 싶다
마주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도
나란히 쳐다보면 보이는 것이 있다
비 오는 날에
우산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비 내리는 풍경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면
홀가분하게 비를 맞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