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4
겨울바다는 언제나 시를 머금고 있다
사람이 찾아오면 파도를 밀면서
시를 싣고 바다 밖으로 나온다
바닷가에 흩어진 시는
낱말과 낱말을 이어 주던 조사를 찾아
엉금엉금 기어 다닌다
떨어져 나간 조사는
파도에 쓸려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길 잃은 글자들은 시가 되지 못한다
시는 바다가 머금고 있는 동안에만
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조사를 잃은 외로운 낱말들이
터벅터벅 바닷가를 걷는다
다시 시로 일어날 수 있을까
하염없이 먼 수평선을 쳐다보며
조사와의 추억을 생각한다
파도가 시를 부려 놓고 떠났지만
바다는 헐거워지지 않는 것 같고
바람이 불 때마다
더 많은 시가 생겨나는 것 같다
시를 만나기 위해서는
바다로 가서 바다에 빠져야 한다고
겨울바다가 속삭인다
바다 속에서는 서로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계절이 끝날 때마다 사라지는 것들
새로운 계절 앞에서 서먹해지는 것들
바다가 머금고 있는 모든 이름들
그들의 이름을 불러 본다
먼 바다에 있던 것들이
파도에 쓸려 나와
시가 되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