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6
다가가면 물러서고
물러서면 다가오는 것
뿌리쳐지지 않고 품어지지도 않는 것
안개 속의 푸른 그림자를 안는 일
산에서
멀어져가는 산을 바라보는 일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먼 바다로 굽이쳐 가는
산인지 바다인지 모를 그림자
그래도 해가 지고 해가 뜨고
일상은 계속 일상으로 다가오고
아득한 것은
아득한 것끼리 아득하다
당신을 바라보는 것과
당신이 나를 쳐다보는 일처럼
산길을 걷다 산등성이에 쭈그리고 앉아
산 너머로 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겨울로 가는 가을 저녁에는
글이 차가웠고
봄햇살 받으며 오르는 산에서
글은 따뜻했다
차가운 것과 따뜻한 것은
내 발바닥에서 느껴졌고
차가운 것과 따뜻한 것은
같은 발바닥 안에서
봄과 가을의 거리만큼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