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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풍경

소풍

by 1004들꽃 2020. 3. 6.

소풍


걸음도 걷지 못하고
누워서 울기만 했던 시절이
얼떨결에 누군가의 기쁨이 되었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성질만 부려
애간장을 태우게 했던 시절을 지나
눈 깜짝할 사이에 청춘 다 보내고
어느새 손자 때문에 애 태우는 아들을 보며
지난날 기억 속을 거닐며 살아간다
한 번도 즐기지 못하고
한 번도 나를 위해 살지 못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못하고
일요일이 지나가는 것처럼
붙잡을 수도 없는 세월을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흘려보낸다
반기는 사람 없고
만나는 사람마다 시무룩해서
하는 수 없이 혼자서 소풍을 떠난다
고독하면 내가 고독이 되고
길이 멀면 내가 길이 된다
사랑하지 못하면 내가 사랑이 되어
나를 데리고 소풍을 떠난다
늙은 나를 보여주지 않고
기억도 없는 나를 보여주지 않고
멀어진 기억 속의 길을 걸어서 간다
소풍은 소풍다워야 하는데
한 시절 소풍 왔다가 그냥 간다고 하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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