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바꾸기 (2005. 6.30)
술과 담배를 멀리한 지 며칠.
거의 25년 동안 같이 지내왔던 사람을 보낸 것처럼 자꾸 뒤가 돌아다 보인다. 텔레비전 위나 옆에 있는 담뱃갑을 보면 움찔 하기도 하고 들뜬 사람처럼 방 안을 왔다가다 하다가 무의식중에 술을 한 잔 따르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나의 행동에 대하여 반문하기도 한다. 담뱃갑을 치우지 않는 것은 눈으로 보면서도 자제해야만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의 방법이다.
환경의 변화. 특히 자신의 신체와 버릇에 관한 변화는 누군가와 같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주변의 유혹이 강할지라도 이겨내야만 한다. 그것을 위하여 자신에게 최면을 걸 수도 있다. 최면술사는 아니지만 스스로에게 반복하여 주입시킬 때 가능할 것이다. 담배를 끊기 위해 금연침이나 약물요법을 쓴다고 해서 의지가 없는데 가능하겠는가? 담배를 끊지 않는 것은 끊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담배를 끊는 것은 끊을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당분간 담배를 멀리 해야만 한다. 멀리해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요 며칠동안 계속 피로를 느낀다. 술과 담배로 버텨왔던 힘을 뒷받침해 줄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책과 눈을 맞추기 몇 분 되지 않아 귓속을 울리는 뭔가를 느끼고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다가 몸은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다. 황홀하다고나 할까.
이렇듯 계속해 오던 일상을 바꾸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이렇게 계속해서 허공에 뜬 기분으로 일상을 보낼 때 그것이 버릇이 되지 않을까하는 내심 불안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현재 읽고 있는 책이 이제껏 읽어오던 책과는 달리 난해하고 따분한 내용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기분이 그러하여 그렇게 생각해 버리는 것인지. 하긴 책장을 두 세장 넘기고 나면 눈꺼풀이 한 짐이나 되는 상황에서 책의 내용을 따지지는 못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변명할 수 있는 것은 책의 내용이 따분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눈꺼풀의 무게 불리기에도 한 몫을 하는 게 아니냐고.
장마철인 만큼 그렇게 덥지도 않고 시원하지도 않는 흐린 날이 며칠 동안 계속되고 있다. 생활의 변화란 것은 외부에서 주는 요인이 강하겠지만 내부로부터 일어나는 요인은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강하게 작용한다. 외부적 요인은 대부분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고 내부적인 요인은 본인 또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사회성을 띠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되지 않을 때 외부적 요인과 결부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부부싸움을 한 다음날 직장에서의 일처리가 매끄럽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계속되는 일상에서 생활 바꾸기를 한번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떨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를 한 달 동안 끊어 보기도 하고 집안 청소를 한번도 하지 않았던 남편들은 일주일 동안 집안 청소를 도맡아 해 보기도 하고 친하지 못했던 사람과 친해보려는 시도도 해 보고.
모든 시도하는 행동들이 성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살아오면서 자신을 대상으로 의지를 시험해 본 일이 없다면 생활에 활력을 넣는다는 의미에서 한 번 쯤은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의지력 시험이 성공하기를 기원해 본다.
※ 한 달 만에 실패했음.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 (0) | 2008.05.28 |
---|---|
꿈꾸는 세월 (0) | 2008.05.28 |
칭찬의 힘 (0) | 2008.05.28 |
시작詩作에 대한 단상 (0) | 2008.05.28 |
딸이 중학교에 입학했다 (0) | 2008.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