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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산책

by 1004들꽃 2008. 5. 28.

산책

  일요일이면 늦잠을 자고 일어나 미루어 놓았던 청소도 하고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오전이 다 간다. 그럴때면 티코를 타고 남산을 찾는다. 그런 시간이면 남산에도 인적이 드물다. 어쩌면 모처럼 맞는 일요일을 제각각 바쁘게 보내고 있을 것이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산을 오른다. 처음에는 숨이 가쁘게 몰아쉬어지지만 한고비를 넘기면 숨이 골라진다. 주변에는 말 한마디 건낼 동행도 없다. 그럼에도 혼자가 아니다. 생각속에 많은 사람들이 스쳐간다. 한 발자욱 한 발자욱 움직일 때마다 다른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생각의 시작도 끝도 없다. 그저 자유롭게 이 생각 저 생각이 떠 오른다
  그래 그랬었지, 저렇게 할걸, 아니 이렇게 해 보았으면........  한참을 걷다보면 갑자기 한 덩어리의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다. 간이 철렁, 아이고 무서워! 순식간에 머리칼이 쭈삣, 그때부터는 나뭇가지에도, 땅에도 귀신이 붙어있는 것 같다. 양쪽은 아예 쳐다볼 생각도 없다. 앞만 보며 자꾸만 걸어간다. 걷다보니 어느덧 땀이 이마를 촉촉히 적시고 귀신은 어디론가 가 버렸다.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 같다. 너무나 슬퍼서 울다가, 또 울다가도 시간이 흘러가면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조차 망각하고 만다. 겸연쩍은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울음을 그치기도 한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을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생각 속에서 갑자기 친구와 함께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앉았다. 생각 속에서 반쯤은 술에 취한 기분도 든다. 산길을 걷다보면, 그것도 혼자 걷다보면 내가 왜 걸어가고 있는지 더 심해지면 걷는 것 마저 잊어버리고 만다. 꽝 ! 하는 소리에 앞을 쳐다보면 큰 소나무가 한 그루 버티고 서 있다. 또다시 걷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죄 없는 돌멩이만 걷어차 본다.
  어느새 정상에 올랐다. 세상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기독교에서는 그 끝을 궁극으로 빗대기도 한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그렇게 계속 가다 보면 사람이란 것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의 의문을 제시하게 되고 결국 절대자의 존재를 이끌어 낸다.
  세상은 꼭 따져 보아야 하는 것일까? 현재의 내 삶을 영위해 나가는데 있어 따져서 이익이 될 것이 있고 손해를 보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두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깨어지지 않은 비밀스런 나만의 보따리로 남을 수도 있다. 그 속에 낡은 바지저고리 한 벌이 들어 있을 지언정 열어보지 않는 이상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미움의 싹들을 애써 피울려고 하지 말고 꿈이 들어있는 보물상자라고 생각을 해 보자. 그러면 최소한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수그러들지는 않을까?
 산꼭데기에는 아무도 없는데 쓰레기통만 뭔가로 가득차 있다. 꽤나 많은 사람이 다녀간 모양이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길을 걸어왔을까? 또 무슨생각을 하며 돌아갔을까 ?
  시멘트로 만든 나무의자에 앉아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싱거웠던 일들, 괴로웠던 일들, 고통스러운 일들, 짜증나는 일들, 모든 것들이 담배연기에 휩쓸린다.  바람이 불지 않는 탓에 담배연기는 그냥 가기 아쉬워 주위를 한바퀴 맴돌다 흩어진다.
  툭툭 털고 일어나 산을 내려 오노라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저 속에서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구나. 약국도 있고, 시장도 있고, 군청도 있고, 술집도 있다. 시원하게 쭉쭉 뻗은 우회도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한 동안 지내왔던 시절들을 되돌아 보면 걸어서 5분 남짓한 직장과 집 사이를 오가며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이었다. 옆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저 아침에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하고, 자식들이 반겨도 그만 반기지 않아도 그만인 세월들을 아무런 불편없이 잘도 넘겨왔다. 그러면서도 한 달이 지나면 어김없이 월급명세서를 받게되고 - 사실은 결혼을 한 이후 월급이라고 손으로 만져본 적은 한번도 없다 - 그렇게 차곡 차곡 세월들을 잘도 보냈다.
  산길을 한 동안 내려오다 보니 산으로 가로막혀 나무들만 눈에 들어온다. 나무야 네 신세가 부럽구나. 바람이 불면 부는데로, 비가 오면 오는데로, 눈이 오면 오는데로 항상 그 자리에 있으니 아무생각 없겠구나
  숨을 쉬며 살 수 있는 날들이 며칠이나 될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아둥바둥 살아보지만, 다 했구나 싶으면 또 할 일이 남아있고, 앞으로 살 날이 며칠이나 될까? 자꾸만 바빠진다.
  인생을 산책으로 치유해 버리고 싶다. 삶의 순간 순간들이 모여 한 인간의 생애가 되듯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욕심을 버리고 차분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다툴것도 없을 것이고 그렇게 잘못된 삶을 살아간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주교에서 벌이고 있는 “내탓이요”운동(?)이 문득 생각이 난다. 가슴을 세 번 치며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나 한사람의 보이지 않는 조그만 양보가 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큰 힘이 될 것이란 뜻일 것이다. 모두가 이런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이 사회가 좀 더 깨끗해 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듯 산 밑에 도착했다. 티코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시동을 거는 순간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나의 가슴에… 이광조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무심코  길을 따라 핸들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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