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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단풍잎 처럼

by 1004들꽃 2008. 5. 28.

단풍잎 처럼


  언제쯤일까?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무언가를 할려는 의욕으로 가득찬 시절이…. 그러한 것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지금 문득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특별하게 한 일도 없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그저 짜여진 틀 속에서 기계의 부품처럼 소리내지 않고 잘 돌아가는 전자제품의 부품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 무엇을 바라고서인지, 어떠한 일을 위한 준비를 위해서인지 그 중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십년을 아니 지금의 내 나이만큼을 살아왔다.
  쓸쓸한 가을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도
  눈이 오고 비가 올 때도
  아지랑이 무성한 봄날이 지나갈 때도
  그럭저럭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여러날들을 살아왔다. 돌이켜 보니 꽤 많은 세월이 지나있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가고, 계절의 바뀜이 그렇게도 자주 있었던가 싶다.
  일상생활의 단조로움을 떨쳐버리고 싶을때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로 가끔씩 산을 찾았다. 혼자서 찾는 산은 그 어디에도 비교될 수 없는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말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새들의 지저귐이 바람에 어울려 귓전에 속삭일 때는 사랑하는 이의 달콤한 속삭임 같고.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걸음걸음마다 이마를 간지럽히는 속삭임이 있다. 누구일까? 그것은 단지 내 걸음걸음이 누적된 결과로 일어나는 생리적 현상이다. 정상에 올랐을 땐 비오듯 땀이 흐른다. 아무도 땀을 흘리지 않고서 정상을 밟을 수는 없다. 정상은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제각기 다른 맛이 있다. 그렇듯 산행이란 변화무쌍의 즐거움이 있다.
  하산하여 정상을 밟았던 산을 쳐다보면 산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등산을 시작할 때 베일에 싸인 듯 막막했던 기분들이 말끔히 사라지고 산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 산행의 시작에서 종결에 이르기까지 - 몸 전체로 느껴진다. 인생도 그러한가 보다. 어릴 때 서른이 된 사람이 상당히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보다도 훨씬 나이가 들어버렸다. 서른이 되면 - 어른이 되면 -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걱정도 했지만 그 때 생각했던 어른은 되었지만 아직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한 듯 하다.
  남보다 일찍 뭔가를 달성할려고 그렇게 바쁘게들 살아왔는데 죽음이라는 문턱에서 말없이 떠나가고들 있다. 그들은 이젠 단지 그를 알고 있는자들의 머릿속에 한가닥 기억 속의 사람으로만 존재하게 될 뿐이다. 퇴직자들의 뒷모습처럼 그저 그를 알았던 몇몇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가닥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만 남을 뿐인데.
  산에서 내려왔을때 처럼 한 번씩 자신을 돌아 볼 기회를 가지고 살아가기로 하자. 살아온 날들이 너무도 쉽게 버려지는 것 같다. 지금껏 살아온 나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친구도 있다. 역사책 속에 기록되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개인은 단지 역사책 속의 많은 군중들 속의 한 부분이겠지만, 그들 개개인의 모습들이 모여야만 전체적인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역사를 잘 가꾸어 나간다면 멋진 인생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누구든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던 마음처럼 희망과 의욕으로 넘치던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책갈피에 끼워져 소중하게 간직되어 온 단풍잎처럼 간직하기만 했던 의욕들을 다시 한번 불태워 봄은 어떨까

 

의령문학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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