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지나가는 날에
봄이 다 지나가고 나서야 겨우
봄이 왔었다는 것을 알았다
봄이 되면
봄바람이 부는 어느 날
이제 막 꽃을 준비하는 이들을 만나
눈웃음 지어주려 했는데
눈물 머금은 가지마다
따뜻한 손길로 감싸주고 싶었는데
벌써
봄은 저만치 가고
아직도 엉거주춤 웅크리고 있는 나는
잠에서 덜 깬 듯 까무룩해진다
비라도 내리면
움츠린 어깨가 부끄럽지 않을 텐데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 걸려있는 하늘엔
때마침 꽃비마저 흩날리고
무심한 사람들은 아직도
봄이 지나가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
돋보기를 쓰는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아내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제각각 어른이 되어 갔다
그들의 봄에 다가가고 싶어도
봄이 오는 줄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아직도 나는
아버지가 되지 못하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