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같이 걸을 사람 있느냐는 메세지에 응답한 사람 4명
나를 포함해서 5명이 길을 떠났다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 음정마을에서 벽소령까지 연결된 임도를 걷기로 했다 거리는 5.5km 왕복 11km.
벽소령(碧宵嶺) 한자를 찾아보니 푸를 벽, 밤 소. 푸른 밤이라는 뜻이다
푸른밤.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까지 도달해 임도에 접어들었다
기념쵤영을 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항상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사진을 찍는 사람을 보며 웃고 있으니
사진을 찍는 사람은 늙지도 않겠다.
푸른 잎을 비집고 나온 개망초 꽃잎이 상큼하다
달걀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는 실보다도 가는 꽃잎은 여리다 못해 안쓰럽다
푸른 벽에는 때늦은 산딸기가 주렁주렁 열렸고
산수국도 지천으로 깔렸다
사람이 많다보니 쉬어가는 시간도 많다
혼자서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걸어서 벽소령 대피소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속도를 높였다가 늦췄다가를 반복하며 걸으면서 쉬는 방법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을 마실 때 잠시 서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쉬지 않고 걷기만 했다는 말은 신빙성이 없는 말이기도 하다
산사태 위험지역으로 지정되어
이렇게 다리를 한쪽으로 빼 놓은 모양이다
한참을 오르니
물소리가 들린다
물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가보니
얼음보다 찬 물이 소리를 내며 흐른다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첫 물"이다
"두 물"은 더욱 강하게 쏟아져 내리지만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그래서 "두 물" 앞에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는다
한 사람은 사진 찍는 사람을 보고
한 사람은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보고
한 사람은 부처인냥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을 주시하고 있으며
한 사람은 서서 그 셋을 관찰하고 있다
드디어 모두 사진을 찍는 사람을 쳐다보는 순간
그들은 사진 찍히고 말았다
도대체 이 물은 어디에서 발현되어 이렇게 흘러 내리는 것일까
이 높은 곳에서 이렇게 많은 물을
흘러내리게 하는 지리산의 위용을 실감케 하는 순간이다
물론 다른 계곡에서는 이순간 이보더 더 많은 양의 물이 흘러내리고 있을게다
저 먼 아득한 산들은
그들보다 나를 더욱 아득하게 만든다
고사목의 뒷배경이 되어주는 저 산들은
겹겹으로 멀어지며 아름답다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은가?
지나가는 사람마다 고사목과 어울려 풍경이 되는
푸르고 푸른 그림들을 담아간다
그런데도 왜 떠 다니는 말들은 그렇게 불통이 되어 소통하지 않고 서로 싸우는 것일까
말과 말이 싸워서 말을 만들려고 하지만
그 말들은 결코 말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푸른 산과 하늘과 구름
그리고 나무. 꽃, 산목련이라고 하나?
꽃과 나무와 숲과 산과 하늘과 구름, 그리고 그림자
더 없나? 둘러보니 바위도 있다
그들 모두를 산이라고 부르면 그만이지만
나 자신도 산에 들어왔으니 산이 되겠지만
그 속에서도 "나"라는 것은 찾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억지로 꽃과 나무와 숲과 산과 하늘과 구름, 그리고 그림자라고 해 보는 것이다
먼 산들이 아득하듯이
구름을 품은 하늘도 아득하다
하늘을 인 벽소령 대피소 입구
도착했다
적당히 낀 구름 때문에 걷기 좋은 날이었다
바람까지 선들선들 불어오니 더욱 상쾌한 기분
노고단에서 오는 사람
세석으로 가는 사람
음정에서 올라온 사람
연하천 대피소로 갈 사람들이 쉬고 있다
겹겹이 쌓인 산위 하늘로 떠오른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른 빛을 띤다는 '벽소명(明)월'에서 유래했다는 벽소령.
'벽소한(寒)월'이라고도 하며, 벽소를 푸른 하늘의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단다. 푸른하늘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그대로 풀이한 "푸른 밤"이라는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한자를 찾아 보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푸른 밤! 말만 들어도 행복할 것 같은 말이 아닌가?
그냥 도착한 사람
겨우 도착한 사람
사진 찍기 위해 도착한 사람
그런데도 사진을 찍기 위해 도착한 사람은
사진 속에 없다
지리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지리털이풀
노루오줌
다시 돌아 내려오는 길
하루를 보내며
이렇게 잠시 여유를 부려보는 것
낭만적이라고 해야하나
겨우 산에 와서야 이렇게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여유로운 날을 위해
여유롭지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보내고 나면 다시 여유롭지 않은 날들이 다가온다
언제쯤에야 여유로운 날들을 데리고
가장 여유롭게 산책을 할 수 있을까
푸른 밤 달이 가장 아름답다는 벽소령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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