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사 가는 길 (2015. 12. 20)
일주일 전부터 법계사를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법계사를 떠올리면 그와 함께 천왕봉이 떠오른다. 평소에 천왕봉을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나서지 못했다. 나서지 못한 것은 순전히 내 탓이다. 내 다리를 믿지 못하는 것이고 겨울산이라 금방 어두워지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천왕봉을 다녀와야 되겠다는 생각만으로 세월을 보낸 지 여러 해. 따뜻해지는 계절을 기약하며 천왕봉은 일단 뒤로 미루고 법계사를 둘러 내려오기로 했다.
잔뜩 찌푸린 날씨를 등에 업고 길을 나섰다. 칼바위보다는 순두류에서 출발하는 것이 수월하다는 생각으로 법계사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순두류로 향했다. 칼바위 방향보다는 약 한 시간 정도 걷기를 단축시키는 길이다. 눈 쌓인 산의 풍경을 카메라로 찍었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희한하게도 날짜를 조작한 적이 없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2012년 12월 19일이라는 날짜가 찍혔다. 실제로 사진을 찍은 날은 2015년 12월 20일인데도 말이다. 날짜가 찍히도록 설정하지도 않았고 날짜에 손을 대지 않았는데 왜 카메라의 날짜는 까마득한 과거를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무의식적 행동이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자신도 모르는 시간에 자신이 저지른 일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면 얼마나 황당해질까.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그 사실 자체를 자신이 모른다는 것.
하지만 가장 두렵고 기찬 일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기억되었던 일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몸을 빠져나가는 일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웬만해서 잘 잊어버리지 않는데 최근의 기억들은 손가락에서 물이 빠져나가듯 최단시간에 순식간에 빠져 나간다. 늙어서는 책을 읽어도 며칠 지나지 않아서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 그동안 읽었던 책과 섞여서 책의 내용도 뒤죽박죽이 된다.
천왕봉을 보고 싶은 마음이 항상 내 주변을 맴도는 것은 사실 그 옛날 대학 1학년 MT 때 지리산을 찾았던 기억이 뇌리에 박여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밤 로타리 대피소에서 꼬박 밤을 새고 다음날 천왕봉을 찾았을 때 봉우리 아래로 융단처럼 깔려 끝이 보이지 않았던 구름바다.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이던 구름은 그 이후 계속 천왕봉을 찾았지만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찬란했던 기억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인데 현재를 살아가는 나날들은 왜 이토록 희미해져서 기억의 바깥에 머물고 있으며, 모든 기억들은 어째서 한데 들쑤셔져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어쩌면 기억의 희미해짐 현상은 살아가는데 있어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산을 찾다보면 전국의 다양한 산을 찾기보다 접근하기 쉬운 가까운 산을 찾기가 쉽다. 그만큼 운전하는 시간을 줄이고 걷는 시간을 늘일 수 있다. 운전으로 하여금 피곤해지는 시간을 산길 걷는데 투자하여 그만큼 넉넉해진 시간으로 보다 먼 거리를 걸을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산을 찾게 되는데 자주 찾는 산의 형상을 모두 기억한다면 그만큼 재미가 줄어들 것이다. 기억할 수 있는 기억의 거리가 짧아서 자주 찾는 산에서도 항상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또한 축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칼바위 방향보다 순두류 방향으로 걸으면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물과 친구가 되어서 걷기 때문에 훨씬 기분 좋은 길이 될 수 있다. 이 또한 기억의 희미해짐 현상에 의하여 걸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쨌든 산길을 걸으면 어느 산이든 기분이 좋아진다. 봄에는 갓 피어난 연두색 잎의 젖비린내처럼 비릿한 향기가 좋고 여름에는 싱그럽고 촉촉한 초록색 공기가 어깨를 스쳐서 좋고 가을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소리를 내는 숲의 향기가 좋고, 겨울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우우 얼굴로 다가오는 차가운 공기의 촉감이 좋다.
지리산을 찾은 지 제법 오래된 모양인지 순두류 입구에 보지 못했던 통문이 세워져 있다. 세석길을 접어들 때 세워 놓았던 것과 같은 통문이 이곳에도 세워져 있다. 전국의 국립공원에 각각의 길마다 이렇게 시책적으로 통문을 세웠나보다. 해인사 소리길에도 소리길의 시작을 알리는 통문이 세워져 있다. 순듀류 길에는 통문의 이름이 <생태탐방로>이다. 길의 시작에 세워져 사람을 반기는 이런 구조물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지나는 모든 사람들을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만들고 신나는 길을 걷게 만든다.
산에 접어들어 잠시 걷다보면 바로 눈을 만나게 된다. 겨울의 지리산은 눈산이다. 눈을 보고 싶으면 지리산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겨울 눈 덮인 천왕봉을 가보지는 못했다. 언젠가 눈 덮인 천왕봉을 꼭 한번 찾아야겠다는 생각만 있을 뿐, 생각은 행동을 비켜나가 눈이 다 녹은 후에나 찾아가게 된다. 12월 16일 개봉한 영화 대호를 금요일, 토요일 연속하여 보았는데 영화 대호의 지리적 배경이 지리산이다. 그 영화 속 배경인 지리산을 일요일 찾게 되었다. 대호의 자취를 찾지는 못하겠지만 온통 눈으로 뒤덮인 지리산은 찌푸린 하늘과는 달리 푸근했다. 방한모를 쓰지 않고도 추운 줄 몰랐고 가끔 장갑도 벗었지만 손이 시리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로지 산의 기운과 나의 기운이 함께 어울려지는 것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높은 산이든 낮은 산이든 그 산의 기운은 오롯이 산길을 걷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지리산이든 의령의 자굴산이든 산은 그 산만이 가지고 있는 기운이 있어서 산을 찾는 사람만이 그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산의 곳곳에 물이 흐르다 만 흔적들이 있다. 얼어서 대형 고드름이 된 것과 투명하게 바위를 감싸고 있는 것, 그리고 얼어 있는 물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눈의 기억들이 산의 곳곳에 포진해 있다.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 산의 곳곳에 펼쳐져 있다. 산이 가지고 있는 그 표정만으로도 내가 스스로 산이 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산은 그저 산으로 있지만 사람들은 제각각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산을 찾을 때마다 산은 다른 산으로 다가온다.
겨울산에서 바위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을 보면 흐르는 물이 어는 시간을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당혹스럽다. 산에서는 흐르는 물이 흘러내리며 흘러내리는 그 모양대로 얼어서 고드름이 만들어진다. 폭포는 그 모습 그대로 얼어서 굳어져 멈추어 있고 봄이 되면 다시 녹아서 물이 되어 제 갈 길을 가게 된다. 얼마나 추우면 그렇게 되는 것일까. 가끔 집에서도 물이 흐르는 모양대로 얼어있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폭포가 얼어가는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았다. 그 현상을 보며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낱말을 생각해 볼 때 <신비>라는 낱말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흘러내리며 어는 물의 온도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눈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로타리 대피소에 도착하게 된다. 그렇게 먼 길도 아니고 쉬엄쉬엄 가다보면 다가오는 지리산에서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대피소가 바로 로타리 대피소일 것이다. 이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약 2KM. 가장 험한 길로 안내판에 표시된 길의 색깔은 검은색이다. 법계사 일주문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천왕봉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다고 한다.
법계사로 들어가면 입구에 쇠말뚝을 전시해 놓았다. 법계사 혈맥을 끊은 쇠말뚝이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 자리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1,450m에 있는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한다는 설에 의해 여러 차례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고 한다.
적멸보궁을 지나면 범종각이 나온다. 다른 사찰과 달리 <한 번씩 종을 쳐 보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기둥에 붙어있다. 종을 쳐 보았다. 아주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종소리와 때를 맞춰 저쪽에서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그 시각에 스님이 먼 산을 보며 목탁을 치기 시작했다. 목탁소리와 종소리가 어울려 먼 산으로 흘러갔고, 그 소리는 어느 한 많은 사람의 가슴을 녹여 줄 법도 했다. 사람의 목으로는 낼 수 없는 소리가 산을 쓰다듬으며 퍼져 나가고 산은 그 소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내고 소리는 차츰차츰 약해지며 소멸한다.
적멸보궁 뒤에 산신각이 자리 잡고 있다. 지리산의 기운이 다른 산의 기운보다 예사롭지 않은 것이어서 산신각의 규모도 절의 규모에 비해 큰 편이다. 불교를 받아들이기 위한 일환으로 산신을 달래고자 했던 그 옛날 사람들의 생각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건물이다.
산신각은 산악숭배나 마을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산신각이라는 명칭 외에 산신당·산명당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의 불교사찰에 있는 산신각은 고유 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도 같이 모셔졌다. 명칭은 산신각·칠성각·삼성각 등으로 불린다.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이라 하며, 이는 한국 불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이다.(다음 백과사전)
타협이라고 해야 하나? 모두 살아남기 위한 타협. 긍정적인 삶의 방편으로서의 타협은 너무나도 좋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의 길은 소원하기만 하고 끝나지 않는 싸움의 길을 망연하게 쳐다보는 수밖에 별다른 대책은 없는 것 같다. 매일 싸우면서도 지치지도 않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그들의 입에서는 항상 <국민>이라는 두 글자가 터져 나온다. 얼마나 많이 먹었기에 뱉어도 뱉어도 남아 있을 두 글자 <국민>
법계사 극락전 앞에 흰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걸어본다. 등산화가 눈 속에 푹 빠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다녀갔을 것인데 눈을 밟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나보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보면 몸은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게 되고 몸은 몸 스스로 움직여 눈 속으로 들어간다. 눈에 찍힌 발자국이 선명하다. 눈도 산의 일부여서 눈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산과 눈과 사람이 일체가 되어서 산이 되고, 스스로 산이 되어서 산과 함께 길을 걸어야 한다. 스스로 산이 되면 피곤한 줄 모르고 걸을 수 있다.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서 천왕봉에 닿게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다. 말만 들어도 눈물 나는 글자 그것은 또 <집>이다.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집>이라는 글자. 그 한 글자 속에는 평생 이야기해도 모자랄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집으로 돌아온다.
사찰의 일주문에 닿기까지 가장 거리가 먼 곳이 아마도 법계사의 일주문일 것이다. 성철 스님을 만나려면 삼천 배를 하라는 말이 있다. 삼천 배를 하는 동안 남을 미워했던 마음이나 잘못했던 일들을 모두 반성하게 되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스님을 만날 필요가 없어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법계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지루하고 고되다. 그 지루함과 고됨은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하고 걷는 동안 세상에서 찌든 마음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법계사를 나와 칼바위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눈 덮인 법계사는 안락해 보였다. 잠시 가다보면 천왕봉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평지가 나온다. 마침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주변의 구름과 함께 섞여서 천왕봉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휘몰아치는 천왕봉 눈보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지만 눈보라는 사진 속에서 휘몰아치지 않는다. 눈보라는 오로지 천왕봉에 도착한 사람들에게만 휘몰아치는 모양이다. 천왕봉 좌우 능선으로 뻗어 있는 먼 산들도 눈이 쌓였다. 칼바위 방향의 길은 비교적 햇빛이 잘 드는 길이라 눈은 대부분 녹고 없었다. 칼바위를 지나니 눈은 대부분 눈에서 사라졌다. 산보를 한 기분이다. 순두류 <생태탐방로>로 들어가 중산리 <통천길>로 내려왔다.
흐르는 물소리가 싱그럽다. 차가운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흐르는 물소리에도 온도가 있어서 겨울에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얼음보다 차가울 것 같고 여름에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듯 시원한 신비의 물처럼 느껴지게 한다. 흐르는 땀을 식히기 위해 계곡물에 머리를 거꾸로 박아보면 대부분 30초를 넘기지 못한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계곡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다가가는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다가갈 때 계곡물은 그 다양한 생각들을 그대로 받아 녹여서 그들이 원하는 물의 모습으로 다가간다. 산도 다가가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산에 대하여 “이렇다”고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 (0) | 2016.01.11 |
---|---|
자굴산 가는 길 (0) | 2016.01.04 |
함양 화림동 계곡 농월정을 찾아서 (0) | 2015.08.26 |
푸른 달의 체취를 찾아서 (0) | 2015.07.22 |
모산재 탐방(2015. 6. 6) (0) | 2015.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