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서면
찬바람과 더운바람이 섞이면서
지난 기억을 지워버린다
나뭇잎을 허옇게 뒤집으며
기억을 소환하려 하지만
바람은 그저
지난일은 지난일일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기억은 형체가 없는 것이어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처럼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늙어가는 것은 바람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인지
바람이 불 때마다 기억 한 가지씩 날려 보내서
아들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여자이면서도
딸보다 아들을 더 원했던 시간은 어느 곳에도 없고
오늘도 바람이 불 때마다
아들을 날려 보내고
딸을 날려 보내고
다 날려 보내고 나면
스스로를 날려 보내고 만다
계절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불어댈 것이다
시가있는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