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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물 따라 바람 따라 걷는 길

by 1004들꽃 2015. 2. 25.


물 따라 바람 따라 걷는 길

 

 

 

의령읍 서동생활공원 자전거길 홍의정 가례공설운동장 농로 - 신포숲 칠곡면 내조마을 점심식사 농로 가례공설운동장 홍의정 자전거길 서동생활공원

 

의령에서 살아가면서 자동차나 자전거를 이용해서 가던 길을 걸어서 간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보자. 고된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취미라든지 젊음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할 수 있는, 그래서 아직 젊음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고서 길을 나서는 사람은 자신감이 넘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허리가 곧게 펴지면서 발걸음이 상쾌해진다. 가을날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둑길을 걷다보면 마음은 혼자 들떠서 어느새 가을의 푸른 하늘로 올라가 있다.


의령읍 서동생활공원을 지나 덕실 방향으로 4차선 우회도로를 가로질러 가면 곧바로 자전거길과 합류할 수 있다. 우레탄포장길과 마사를 깐 길이 반씩 나뉘어져있다. 취향에 따라서 걷고 싶은 길을 선택하면 된다. 자전거길 위에 서면 의령의 서쪽 방향 탐사를 위한 준비를 마친 셈이다. 칠곡면까지 걸어서 가고 돌아오면서 주변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여정을 잡는다.

길을 걷는데 있어 많은 것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혹시라도 걱정스러워 많이 준비할 경우 먼저 무게 때문에 쉽게 지칠 수 있고, 둘째 그 많은 것을 먹어버렸을 때 걷기를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낭에는 목을 축일 수 있는 물과 쉬어 가면서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맥주만 넣고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만 준비하면 된다.


의령읍에서 칠곡면까지의 거리는 약 9.7km 정도다. 가례면까지는 우레탄 포장을 하여 푹신한 기분이 발바닥으로 전해져 온다. 맑은 물길이 이어지는 서천변을 끼고 가을꽃들이 만발하는 물길을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싱그러운 초가을 풍경 속을 걸어서 간다. 평소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냇물의 맑은 소리가 들리고 물길 주변으로 피어난 꽃이 제각각 모습을 뽐내며 진하게 전해주는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보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하얗게 부서지고 아직 떨어지지 않고 보에 걸려 있는 물은 거울처럼 고요하다. 투명해서 바닥이 다 들여다보이는 물을 쳐다보며 넋을 잃는다. 물은 겨울로 갈수록 맑아지고 밀도 또한 높아진다. 그만큼 더 차가워지고 더 무거워질 것이다.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꽃을 피우는 코스모스는 노랑색과 분홍색으로 어우러지고 포말로 떨어지는 흰 물살과 어울려 향기롭다.


어린 시절 흔히 서산밑이라고 불렀던 곳에 이르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 길로 가면 가례면 소재지로 가게 되고 왼쪽 길로 가면 칠곡면으로 가는 물길을 계속 따라갈 수 있다. 물길을 따라가는 길의 오른쪽 홍의정에서는 한량들이 한가롭게 활을 쏘고 있고, 홍의정을 지나면 산에 달라붙어 흘러내리는 한 줄기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의령에서 폭포를 보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산이 낮고 깊지 않은 홑산이라서 물을 품을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 의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견디고 받아들여야하는 환경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르익은 들에는 벼들이 고개 숙이고 왜가리는 먹이를 찾아 냇물에 섰다. 어은동으로 가는 이정표를 지나면 말끔하게 단장된 가례 운동장에 도착한다. 인조잔디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떡하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당장 뜯어낼 수는 없는 일이고 이미 갖춰진 시설물이라면 아끼고 잘 관리하여 최대한 깨끗하게 유지하여 활용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운동장을 뒤로하고 은광학교 옆을 지나 계속 물길을 따라 난 시멘트포장길을 걸어서 간다. 아직도 푸른 잎 위에 발그레한 꽃을 피워낸 갈대가 방랑객을 반긴다. 갈대는 퇴적된 하천 바닥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최소한의 물길만 내어주고 섰다. 갈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우우 소리를 낸다. 먼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에 안고 새들의 울음소리를 섞어 슬프고도 슬픈 울음소리를 낸다. 갈대의 울음소리는 먼 산 너머로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다시 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한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소리들은 제각각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긴 세월을 견디어 왔으리라. 냇물의 중간중간 만들어 놓은 보는 윗물과 아랫물을 이어주며 흰색 줄무늬를 만들어내고 보를 지나 햇살을 품은 물은 물비늘을 나부끼며 눈부시게 반짝인다.


논길을 따라 계속 걸어서 가면 칠곡면으로 접어들고 저 멀리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자굴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굴산은 해발고 897미터로 경남의 중심부인 의령의 진산으로 인접 시·군과 근거리에 위치하고, 방문객 취향에 따라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는 다양한 산행 코스를 가지고 있다. 자굴산은 궁류의 한우산과 가례의 응봉산, 용덕의 신덕산과 이어져 하나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의령을 감싸고 있는 이 거대한 산맥 전체의 형상이 황소를 닮았다고 한다. 자굴산의 우람한 덩치가 황소의 머리, 동남으로 길게 뻗은 한우산과 응봉산의 산줄기가 몸통이며 신덕산이 엉덩이 부분에 해당된다고 한다. 자굴산과 한우산을 연결하고 있는 고갯길이 있는데 이 고개의 잘록한 모양새가 마치 소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쇠목재로 불리고 있다.(의령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발췌)


자굴산을 쳐다보며 잠시 아스팔트 국도를 따라가면 신포숲을 만날 수 있다. 소나무숲이 우거진 상쾌한 숲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면 온 몸을 소나무 향으로 헹궈낸 듯 기분이 좋아진다. 여름을 견디어 낸 숲은 아직 여름을 보내지 못하는 매미들의 아쉬움을 아련하게 전해준다. 숲의 오른쪽에 흐르는 개울에 발을 담그면 숲과 개울과 몸이 하나가 된다. 숲이 뿜어내는 솔향기와 개울 바닥의 자갈을 스쳐 흘러가는 물소리도 하나가 되어 가을날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숲을 지나 신포마을을 지나면 칠곡면사무소가 있는 내조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내조마을은 그 옛날 자굴산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에게 익숙해져 있는 이름이다. 칠곡면의 다른 마을의 지명은 알지 못했으나 내조만은 알고 있었다. 산을 찾기 위해서는 꼭 알아야 할 지명이었기 때문이다. 지리산 주변의 마천이라든지 거림이나 중산리 같은 지명도 그저 산을 찾기 위해 알아야 할 지명이었지 행정구역에 대한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산리를 가고자 할 때는 의령에서 진주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중산리로 가는 버스를 타면 그만이었다.


면사무소 주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할 수도 있고 마을을 벗어나 돌아오는 길에서 풀내음이나 의령돼지국밥, 국시한그릇 등 식당을 만날 수 있다. 취향대로 고르면 된다. 막걸리라도 한잔 곁들이면 쌓였던 피로가 씻기고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갈 수 있다. 어쩌면 자연을 벗 삼아 걷는 사람들에게 막걸리 한잔의 유혹은 떨쳐버리기 힘든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막걸리 한잔에 나무도 향기로워지고 발부리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에도 애정이 가고 비로소 길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진다.


길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지만 사람이 걷지 않으면 길은 길로써 이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다른 지방의 길을 걷는 것도 좋겠지만 의령에서 살아가면서 의령에 있는 길을 걷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요 추억이 될 것이다. 걷는 길을 다양하게 발굴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각자의 성격에 맞는 길을 선택하여 많은 의령사람들이 의령의 길을 걷게 될 것 같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부영양화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서 걷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여겨진다. 상쾌한 공기와 맑은 물소리와 싱그러운 숲의 향기를 느끼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보자.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길인사를 하면서 길을 걸어서 갈 때 길은 아름다운 길이 될 것이고 걷고 싶은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