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통 눈구경을 못했다
라디오 여성시대의 사연을 한두편 들을 겸 모산재를 향했다
가끔 눈물겨운 사연도 있고 훈훈한 사연도 있고 미소짓게하는 사연도 있다
모산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터벅터벅 걸어서 산으로 향했다
무슨 날을 잡았는지 버스가 많이 있다
모처럼 산행에 나선 사람들인 모양이다
산을 보호하고 자연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단체산행은 가급적하지 말라고 권하는데
권하든 말든 상관없는 모양이다
대여섯 정도면 재미도 있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 맛도 제법일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면 산을 가는 것인지 하늘로 가는 것인지
어차피 선두와 후미는 많이 떨어져서 서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처럼 되고
각각 산행을 하게 된다. 어쩌면 단체 산행을 말릴 이유도 없는 것 같다.
누군가가 주먹만한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시작에서는 눈을 보지 못했는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눈이 내릴 때 눈속으로 걷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지만
눈내리는 시간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땅의 온도는 눈을 녹여버리지만 낙엽 위에까지 땅의 온도는 전달되지 않는 모양이다
낙엽 위에 쌓였던 눈은 제법 많이 남아있어서 산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고장에 사는 사람들은 일부러 눈을 보러 가기도 하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눈이 점점 더 많아진다
누구의 발자국도 닿지 않은 순수한 눈의 모습이다
멀리 자굴산과 한우산의 모습이 보인다
맑은 날에는 선명하겠지만
흐린날 구름과 안개와 미세먼지 사이로 모습을 보여주지만
희미한 모습은 자굴산인지 한우산인지를 분간하기 힘들게 한다
먼 산들은 희미한 안개 속에서 아득하다
바위산과 산의 틈새에서 다랑이 논도 보이고
산을 가로질러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도 보인다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눈 속에서 푸름을 잃지 않은 소나무와 바위가 얽혀서 무슨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아직 채 떨어지지 않은 나뭇잎은 시든 채 나무에 매달려 있고
푸른 소나무 잎은 눈 속에서도 푸르게 찬란하다
저 속을 굴러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포기하고 만다
산을 오르면서 흘렸던 땀이 대번에 식었고
어느새 등에서 찬기운을 느낀다
식은 땀과 바깥의 기온이 합쳐져서 한기를 느낀다. 오래 머물 수 없고 계속 걸어서 열을 내야 할 형편이다
발자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아있지 않겠지만
눈을 밟는 촉감을 느껴보는 것이다
멀리 눈에 뒤덮인 황매산이 보인다
모산재에서도 황매산은 또렷하게 다가온다
산은 멀어지면서 겹쳐지고 겹쳐지면서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잃어간다
산은 멀어지면서 같은 색깔이 되고
더 멀어지면 하늘색이 된다
먼 곳을 한없이 바라보는 돛대바위는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일까
바람을 받아서 한껏 부푼 모습으로
자굴산과 한우산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망루에 앉아서 자굴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저 멀리 돛대바위는
바람을 한껏 안고 산을 이동시키려 한다
산은 매년 조금씩 돛대의 힘의 받아서 움직이려 한다
아직은 밀고 당기는 힘이 같아서 제자리에 있지만
언젠가 힘의 균형이 깨지는 날에는 산이 어느쪽으로든 움직여 있을 것 같다
실컷 눈구경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서는
점점 눈도 멀어져 간다
바위산에는 눈도 오래 버틸 수 없어서
흙과 나무가 어울려 있는 곳에 비해 눈의 양이 적다
저 멀리 눈을 두고 내려갈 시간이다
다시 오는 그날에는
더 많은 눈이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가 가기 전에 눈을 보러 반드시 다시 와야겠다
양력으로 오지 못하면 음력에라도 다시 오겠다.
'2015년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계사 다녀오기(2015-12-25) (0) | 2015.12.26 |
---|---|
법계사 탐방(2015-12-20) (0) | 2015.12.20 |
청도 운문사, 와인터널(2015-11-29) (0) | 2015.11.30 |
자굴산(2015-11-28) (0) | 2015.11.28 |
모산재 탐방(2015-11-21) (0) | 2015.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