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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남강 둑길을 걸으며

by 1004들꽃 2019. 4. 26.


남강 둑길을 걸으며


봄이 막 지나갈 무렵. 그렇다고 초여름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른 늦봄이라고 해야만 할 시기가 되면 온 들이 농사일로 바쁘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은 농부들이 바쁜지 아닌지를 분간하기 힘들다. 특히 하우스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지역에 가 보면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하우스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하우스에 들어가서 뭘 하고 있는지를 쳐다보는 것도 멋쩍은 일이다.


봄이 완전히 다 내려온 날 남강을 따라 이어진 둑길을 걷다보며 논은 대부분 하우스로 가득 차있다. 하우스와 새로 돋아난 초록색 풀의 색깔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다. 벼농사를 위주로 농사를 지을 때는 여름의 초입에서 모내기를 하는데 논에 심은 모는 며칠 지나지 않아 주변의 풀과 어울리게 되고 온 들은 초록 물감을 덮어쓴 듯 푸르다. 90년대 초반에는 일손돕기를 나가면 주로 모내기를 했다. 이앙기가 아닌 못줄을 따라 손으로 모를 심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가을에는 벼베기 일손돕기를 나갔다. 낫으로 벼 밑동까지 싹둑 잘라서 소에게 먹일 먹이의 양이 많도록 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겨울이 되면 논물이 얼어서 빙판이 되었다. 강물보다 위험이 덜한 논에는 아이들이 썰매 만들어 타면서 하루종일 놀았다. 해가 질 때쯤에야 아이들은 제각각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그런 풍경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혹시라도 산간지방의 천수답에는 그런 풍경이 그려질지 모르겠지만 썰매를 타고 놀 아이들이 없어서 다만 얼어붙은 논의 풍경만 그려질 뿐이다.


지금은 둑길 양쪽으로 벚나무를 심어서 봄이면 벚꽃을 보고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산책하기 좋은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가끔 허리를 돌리고 어깨를 풀 수 있는 운동기구를 만날 수 있고 휴일이 아닌데도 자전거를 세워두고 쉬어가면서 스마트폰을 뒤적이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몇 년 전 주중에 연가를 내고 순천만을 찾은 일이 있었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완전히 오산이었다. 의령의 의병제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무슨 행사를 하는지 살펴보았는데 어디에도 그런 안내 포스트나 현수막은 보이지 않았다. 임신을 하였는지 배가 부른 아이의 엄마가 유모차에 아이를 앉히고 유모차를 밀며 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순천만의 초여름은 온통 초록의 갈대로 뒤덮였다.


의령에서는 의병제전 기간만 되면 모든 업무를 뿌리치고 행사장 주변을 배회했다. 매년 같은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자리를 잡고 술을 파는데 맛도 없고 혹은 상한 것 같으면서 비싸기만 한 술을 속는 기분으로 마셔왔던 많은 날들이 스쳐지나간다. 대부분의 술을 파는 상인들은 하천 주변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파는데 밤새 술을 마시던 자리 주변 하천에는 다음날 낮이 되면 음식물 쓰레기가 가라앉아 있거나 기름이 물 위에 둥둥 떠 다녔다. 행사가 끝나고 청소를 하는 날에는 상인들이 지나간 자리에서 쓰레기를 뒤덮고 있는 파리를 쫓아내고 썩은 음식을 쓰레기봉투에 담는 일을 꾸역꾸역 농사를 짓는 일처럼 했다.


올해 의병제전은 처음으로 주간 기념식을 없애고 야간 개막식으로 바꿨다. 내년부터는 홍의장군 축제로 이름을 바꿀 예정이다. 사람들도 작명소에 가서 돈을 주고 이름을 짓거나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이름을 무엇으로 짓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운명이 달라질지 모른다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불안 또는 희망,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계통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에 작동하여 이름을 바꿀 것이다. 사람들은 부모가 지어 준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은 축복받은 것이라 해야만 한다. 특별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듯이 평범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모두가 세상에 태어난 이상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름을 바꿔서 특별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희망은 그래서 별 설득력은 없는 것 같다. 이미 특별한데 더 특별할 필요가 있겠는가.


대다수의 의령 주민은 지금껏 의병제전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행사를 지켜봤기 때문에 그대로 의병제전으로 가는 게 좋다고 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요즈음 축제에는 특별한 색깔을 입히는 것이 유행이며 특별한 색깔이 성공을 좌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홍의장군을 상징하는 옷이 붉은색이기 때문에 붉은색을 의미하는 홍의장군 축제로 바꾸는 것이 축제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또, 홍의를 입은 장군은 곽재우 홍의장군 혼자가 아니라 그를 포함한 18명의 장군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매년 한 명의 장군을 기념하여 장군의 업적이나 행적을 밝혀 나가는 작업을 해 나간다면 18년이 지나면 18 장군의 업적을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어떻든 내용은 모두 홍의장군이다.


한편에서는 이순신 혼자서 조선을 지켰다고 하고 의령에서는 홍의장군이 아니었다면 전라도로 가는 육상 보급로가 뚫려 조선은 왜놈들의 발에 짓밟혀 초토화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 이순신은 공무원이었고 곽재우는 민간인이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과 공무원은 비교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순신은 정부로부터 아무런 보급을 받지 못했고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아서 스스로 군량을 만들었고 자체적으로 과거 시험을 실시하여 병사를 모았으며 산에서 나무를 베어 활과 배를 만들었다. 최근 <이순신 홀로 조선을 구하다> 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일본인 세 명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이순신과 관련한 축제는 아산 성웅 이순신축제, 통영 한산대첩 축제, 목포 이순신 수군문화축제 등이 있다.


의령에는 곽재우 등 의병을 기리기 위한 의병제전이 있는데 이를 홍의장군 축제 등 이름을 바꿔서 새로운 장이 펼쳐질 것 같은 희망과 새롭게 축제를 이끌어 나갈 의지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어떻게든 축제의 규모를 늘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면 지역의 경기가 활성화되고 사람들의 소득이 높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 줄 것이다. 축제는 이 모든 임무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가야 하는 사람들의 사명이요, 굳은 의지로 보인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축제 중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많이 끌어들일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경기가 좋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늘 불경기였고, 경기침체 등의 소리를 들어 왔다. 농촌의 하우스에는 일할 한국사람은 없고, 농촌의 하우스에는 외국인들로 가득 차있다. 그들은 한국에서 번 돈의 대부분을 자기가 사는 나라로 송금하고 있다. 수입 농산물을 제외하더라도 우리는 농산물을 먹는 대가로 외국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에게 지불하는 돈이 모두 농산물 값에 포함되어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보수를 농산물을 먹는 사람이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하우스 단지가 즐비하게 늘어선 농경지를 둘러싸고 있는 둑길을 걷고 있으면 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떠올리게 한다. 일손을 구할 수 없어서 외국인 노동자를 구해서 일을 시키는 것을 보면서 지역마다 계절을 넘나들며 벌이는 축제를 열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를 쓰지 않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느라 축제를 구경하는 일조차 사치스럽게 생각하는 농부도 있다. 축제를 하는 일과 하우스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일은 별개의 일처럼 보인다.


둑길의 양쪽, 하우스 단지와 하천부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갖 쓰레기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홍수가 났을 때 상류에서 떠내려 오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도 있고 쓰레기와 쓰레기가 부딪쳐 함께 모여 산을 이루고 있는 것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가져다가 버린 것들이다. 쓰레기를 버렸다기보다 양심을 버린 일이고 스스로 환경파괴범을 자처하는 일이다.


최근 필리핀, 베트남까지 불법 쓰레기를 수출하고 있다니 심각한 쓰레기 대란이 아닐 수 없다. 2019년 4월 24일 연합뉴스에서는 “필리핀에서는 한국에서 밀수출된 쓰레기 폐기물도 문제가 된 바 있다. 지난해 말 현지 환경단체가 한국에서 불법적으로 수입된 대규모 폐기물 쓰레기를 되가져갈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환경부는 불법 수출업체에 폐기물 반입을 명령했지만, 해당 업체가 명령을 따르지 않자 대집행을 통해 그 일부를 국내로 가져왔다.”고 보도했다.


하천부지에서 일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농민들은 겨울에 하우스의 보온을 위해 덮었던 부직포를 그대로 버려두고 떠났다. 버려진 부직포마다 풀이 돋아났고 하천 바닥에 솟은 섬처럼 우뚝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홍수가 났을 때 물의 흐름을 방해할 것이고 그만큼 남강과 직접 연결된 농경지의 배수로 흐름을 방해할 것이다.


농지를 따라 설치된 배수로는 진흙과 돌, 쓰레기가 쌓여 있고 농부들은 배수로를 치우기는커녕 배수로에서 쓰레기를 태우고 물건들을 적치해 홍수가 났을 때 물의 흐름을 방해하도록 만들었다. 농부들은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모두 배수장 가까이 있는 주 배수로에 모여 발을 동동 구르며 공무원을 불러서 “이걸 어떻게 할 것이냐”고 고함을 지르며 항의 한다. 공무원은 죄인처럼 쩔쩔 매면서 말을 하지 못하고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겠다고 하며 그 자리를 모면한다. 공무원들은 우기가 끝나고 가을이 지나 해가 바뀌면서 대부분 다른 부서로 이동한다. 농부들도 여름이 지나면 홍수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


새로 그 자리에 온 공무원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여름을 맞고 똑 같은 일을 당하게 된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농부들은 배수로를 막고 쓰레기를 태우는 일을 계속하다가 비가 많이 와서 논에 물이 들어오면 주 배수로에 모여 발을 동동 구른다. 아마도 쓰레기는 평생 치워지지 않고 세상의 농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 쌓일 것이다. 군수가 매년 초에 읍·면 순방을 헤서 건의사항을 받는데 그때 아무도 배수로를 치워줄 것을 건의하지 않고 동네 안길 재포장이나 마을회관 재건축, 농업용 관정개발, 농로 포장 등을 주로 건의하고 있다. 배수로를 치우지 않아 진흙이 쌓이고, 쌓인 진흙에 씨가 날아와 싹이 트고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숲을 이룰 때까지 아무도 배수로에 대하여 신경 쓰지 않는다. 집 마당에 묘목을 심어서 성인의 키만큼 키우려 하면 적어도 5년에서 10년은 키워야 되는데 씨부터 시작하여 성인의 키를 훌쩍 넘는 나무로 크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배수로의 바닥은 시멘트이고 그 위에 진흙이 쌓이고 나무의 씨가 날아와 단단히 뿌리를 박을 때까지 한 번도 배수로를 치우지 않았다는 결론에 닿는다. 농부들은 홍수는 다만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사람의 몸도 배설이 원활하지 못하면 반드시 병이 생긴다. 변비가 생기고 비만이 확산하고 전립선 비대증으로 인해 오랫동안 변기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 음식을 계속 먹는데 배설이 되지 않으면 그 음식은 제 갈 곳을 못 찾아 사람의 몸 어느 곳으로든 침범할 것이고 결과는 병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주택의 옥상 배수로가 막히면 고여 있던 빗물이 천장으로 벽으로 스며드는 것과 같다. 농지의 배수로는 사람의 몸에 비교하면 핏줄처럼 양분을 보급하는 보급로이면서 필요 없는 찌꺼기를 배출하는 이동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은 보급로가 차단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 우기에 농경지의 배수로가 막혀 있으면 반드시 홍수가 나게 되고 홍수에 잠겼던 농작물은 폐기처분해야 한다.


고개를 들어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면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아득하게 다가오는 지난날의 추억이 스쳐지나간다. 남강을 따라 걸으면서 남강을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있는 곳에 닿아 남강을 건너갈 수 있기를 희망했던 스무 살 시절이 있었다. 하루를 걷다가 산으로 들어가 텐트를 치고 1박을 하면서 독감에 걸려 다음날 하는 수없이 비포장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도 그때는 화정면까지 오지 못했고 의령읍과 화정면의 경계 어느 부근까지 왔던 것 같다.


봄을 지나 여름을 받아들이는 이 계절에는 그동안 걷지 못했던 의령의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도 좋겠다. 황사와 꽃가루, 이제 미세먼지까지 겹쳐서 대한민국의 봄날은 선명하지 못하다. 선명하지 못한 날들 속에서 선명한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천천히 자세하게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것이다. 미세먼지를 헤치고 의령의 속살을 온전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걸어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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