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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김숨

by 1004들꽃 2009. 10. 14.

새벽에 비가 내렸나보다. 활동하지 않는 시간에 비가 내리고 활동하는 시간에는 맑은 날씨가 가장 이상적인 날씨가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내린 비는 대부분 밤에 내렸었다. 다음날 아침 움직이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도록 도로가 마른 상태였다. 대지에는 수분을 공급하고 도로나 건물에 쌓인 먼지를 씻어내고 가뭄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선행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는 말과 같다. 자기가 한 일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는 사람. 별스런 일이 아닌데도 자기가 했다는 것을 과시하는 사람. 남이 한 일도 자기가 했다고 하는 사람. 알아주지 않음으로 해서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알려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에야 굳이 알릴 필요가 있겠는가?


전래동화에서는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자신이 한 일을 알리지 않는다. 요즈음은 자기 PR시대라고 한다. 이것도 자기 합리화의 수단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들의 끊임없는 상승욕구의 발로일 뿐이다.


소설가 김숨은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에서 알려지지 않은, 하지만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그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백 밤이 지나고 나면 돌아온다던 아버지는 9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의 딸을 데리고 도시로 떠난다. 자기하고 살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살아내겠다고 하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재 40대 후반이나 50대 정도라면 누구나 겪어 보았을 인물들이 등장한다. 35세인 그녀가 어떻게 이런 상황을 경험했는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1970년대를 살아낸 사람들은 읍내에 사는 것과 면의 구석진 동네에 사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의 문화적 괴리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쓸 뿐이지만 영원히 알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이야기들이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 의하여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책과 독자의 관계의 소중함을 느낀다.


그 시절. 어느 동네에서나 한두 명 있었던 간질병 환자. 봉재공장에 다니며 야간학교를 다니던 딸이 불쑥 임신을 한 채 집으로 돌아오던 일. 공장의 십장과 눈이 맞아 도망간 처녀. 주전자를 들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막걸리 집에서 막걸리를 받아오다가 집에 도착하면 반쯤 마셔버리고 주전자에 물을 타던 일. 밤이면 이집 저집에서 부부싸움하는 소리가 들리고 다음날 부서진 가재도구가 길 모통이에 굴러다니던 일. 그 모든 살아가는 이야기를 엄동설후에 피어난다는 7살 동화(冬花)라는 이름을 가진 계집아이의 눈을 통하여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한 달에 평균 휴대폰 메시지를 삼천 건을 보내는,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으면 된다는 요즈음 아이들에게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의 삶을 이야기해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신이 한 일을 광고하는데 혈안이 되기보다 어쩌면 우리 역사의 일부분으로서 알려야 할 부분을 현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을 대신해서 소설가는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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