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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풍경

나는 주변인이다

by 1004들꽃 2020. 4. 17.

나는 주변인이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짧다

금세 해가 진다

누군가 찾아와 곁에 머물면

그나마 짧은 시간도 빼앗길까

빨리 가기를 기다린다

그가 주인공 역할을 하는 동안

나는 가만히 있는다

한 마디라도 하게 되면

그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혼자가 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다

이제 좀 가는 것은 어떠냐고

목까지 치밀어오는 말을

꿀떡 삼킨다

시간이 갈수록 목에서 나는 소리가 커진다

그 소리는 나에게만 들리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있는 그가 얄밉다

마침내 그가 떠나면

지쳐버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머릿속을 부유하던 문장도 사라지고

어깨를 짓누르던 단어도 사라지고

큰 물고기를 놓친 낚싯꾼처럼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는 나는

친구도 되지 못하고

옳은 시인도 되지 못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주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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