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새들은 날아가고 편대를 이뤄 날아가고
바람은 불고 나뭇잎은 흔들리고
아침에 일어나고 밤이면 잠이 드는데
사람만 지쳐가고 사람만 늙어가고
계절은 지치지도 않고 사람들 마음속을 드나들고
지나온 시간 속에 내 발자국은 어디쯤 있을까
발자국마다 어린 눈동자 숨결 웃음 그리고 눈물
지나고 보니 다 눈물겹다
슬프지 않은 것이 없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놀러 나간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어느 순간 흰머리가 보이던 그녀의 머리칼에도
눈물 대신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눈물도 희석되어 희미해지겠지
술을 마시며 나도 가끔 웃을 수 있겠지
세월은 늙어감의 시간
작아져감의 시간
사라져감의 시간
이야기 소리보다 시계 소리가 더 커져가는 공간
해마다 편대를 이루며 날아왔다 날아가는 새들의 끈질긴 기억처럼
나보다 더 나를 차지하는 기억이 나를 지워간다
수동태의 삶이 파도처럼 덮쳐온다
땅속에 단단히 들러붙은 뿌리보다
바람에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꽃잎이 된다
시가있는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