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라는 곤충의 세계를 쳐다보며 교묘하게 이야기를 엮어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관찰력이 돋보인다. 개미 자체를 이야기한다기 보다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인간세계와 대비해 놓은 것이라 생각 든다. 작품 집필에 12년이 걸린 책이라고 한다.
인간세계를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여왕개미는 그 인간세계를 알려고 하는 개미들을 살해한다. 알지 못해야 하는 계층들이 알고자 하면 그 문을 막아버리는 일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는가.
그러면서도 개미의 세계를 자세하게 묘사해 놓았다. 여왕개미가 독립적인 한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들. 자신의 영광 또는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어머니 여왕개미의 세계를 공격하는 행위. 바로 배신이다. 배신도 서슴없이 행한다. 그 행동에는 부끄러움도 수치심도 없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폭력도 정당화되는 일들이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사냥을 나갔던 개미들이 원인모를 사건으로 때죽음을 당하고 그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개미들은 시시각각 다가드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다. 그것을 피해 세상의 끝으로 여행을 하는 개미. 소설 속에서 그 개미는 103683호다. 나중에 애칭으로 103호로 불린다.
103호는 세계의 끝인 동쪽으로 향하면서 많은 경험을 한다. 도룡뇽과 싸우기도 하고 나뭇잎배를 사용하여 강을 건너기도 한다. 물방개를 길들여 배의 추진체로 이용하고 새롭게 만난 개미들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 불을 이용하게 되면서 적벽대전에 버금가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책은 1부와 2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와 2부는 연결된 이야기이고 3부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다시 1, 2부에서의 진행상황이 연결되기도 한다. 개미와 인간이 대화를 하게 되고 체포되어 재판까지 받게 되는 기묘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책을 보고 있으면 마치 신이 되어서 손바닥 위에 지구와 같은 별을 올려놓고 그 구성원들을 조종하는 상황.
개미라는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진화”라는 게임에서 이미 그의 장편 소설 “신”의 싹이 트고 있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그들을 문명의 세계로 이끌어 가면서 다른 종족과의 교류, 전쟁 등에 맞닥뜨리게 되고 게임을 이끌어 나가는 신의 실수로 종족이 망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신은 다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카산드라의 거울, 파라다이스, 웃음 등과 같은 그의 소설들은 독립된 것 같으면서도 이어져 있다. 신은 6권으로 이어지는 모험과 사랑, 다양한 해학 등으로 이어지는데 결국 그 신은 “독자”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책 속에 들어 있는 인물들은 독자가 없으면 없어져 버리지만 독자가 책을 펼치는 순간 그들은 다시 깨어나 활동한다.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개미들과 사람들과 함께 세 가지 이야기를 전개하며 하나를 이루어 간다. “신”도 백과사전과 이야기가 같이 책을 이끌어 나간다.
책을 덮어버린 지금 개미들은 동작을 멈추고 제자리에 있을 것이다. 책을 펴면 개미들은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사람들의 생활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매일 만나는 사람들도 떨어져 있는 동안은 생각을 벗어나 있고 다시 만나면 생각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대화를 하지 않고는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다. 그나마 글이라는 수단으로 생각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주부가 생략되거나 술부가 애매하게 씌어 지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오해의 소지를 이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개미들과 같이 더듬이를 맞대고 완전소통을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완전소통은 둘의 모든 생각이 하나가 되어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투명해서 적대감이나 친밀감이 완전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살생은 곳곳에서 일어날 것이다. 신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능력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이 내린 축복이다. 서로 모르고 알아가는 과정. 그 속에서 안타까움도 있고, 처절함도 있고 눈물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가 될 수도 있고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소설의 한복판에서 누군가가 보고 관찰하고 있는 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유의지. 신이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관찰하며 재미 보는 장난감이 지구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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