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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by 1004들꽃 2013. 3. 9.

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일본 작가가 쓴 책을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일본인이 쓴 책이라고 잘 느껴지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철이 들면서부터 철저하게 세뇌당하여 무조건 싫은 나라라는 생각. 그러한 생각들이 일본의 모든 것을 싫어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잠시 그런 생각으로부터 놓여나게 한다.


고독을 좋아해? 하고 그녀는 턱을 괴고 말했다. 혼자서 여행하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 떨어져 앉아 강의를 듣는 게 좋아? 고독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을 뿐이지. 그런 짓을 해봐야 실망할 뿐이거든.


소설은 일본의 1960년대와 70년대를 살아왔던 젊은이들이 겪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이 1989년에 한국에 번역되어 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과 일본의 경제적 차이가 약 30년 정도 난다는 설을 뒷받침 해주는 것이 되는 것이다. 1990년 아직도 한국의 경제적인 상황은 88올림픽을 겪었다고는 하나 구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이다. 학생운동이 거의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었던 시절. 졸업을 앞둔 4학년생들은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해야만 했다. 학문이라든가, 사회변동의 문제는 아예 생각지도 않았고, 마치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도록 경마의 눈 옆을 가리고 채찍으로 엉덩이가 헐도록 때리는 것처럼 쫓기는 상황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그리웠던 사람들이 떠나버린 강의실을 찾은 복학생들은 모두 혼자가 되었고 철없던 학창시절의 나날들은 소설 속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눈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것은 학교 강의보다는 취업을 위한 시험 준비가 전부였으며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러도 그저 내 일이 아니니 상관없었고, 사랑은 찾아오지 않았다. 세 살 아래인 여학생들과 강의를 들어도, 같이 여행을 해도 그것은 남의 일처럼 생각되었다. 졸업한 지 20년도 더 지난 지금, 수업을 함께 받았던 후배들의 얼굴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으니 사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같이 입학하여 같이 수업을 들었던 여학생들의 얼굴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또렷하게 기억되고, 그들의 성격이나 습관,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고락과 갈등들이 어제 일처럼 생각나는 것이다. 최근의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먼 옛날의 일들은 점점 또렷해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군 복무 전 2년과 복학하여 졸업을 할 때까지의 같은 2년 동안의 생활은 완전히 별개의 생활처럼 느껴졌다. 복학 후의 생활에서는 살아가는 이유를 찾지도 못했고 시험공부를 하는 것에도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복학 후 찾은 캠퍼스는 그야말로 황량했고 모두가 집에서 나와 강의를 듣고 술을 마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책에서 풍겨지는 배경과 약 30년 전 1, 2학년 동안 내가 겪었던 대학의 배경은 비슷하게 느껴졌다. 책 속에는 사랑이 있었고 상실이 있었고 다시 사랑이 있었다. 소설은 마치 수채화를 그려 놓듯이 세월을 밀고 나간다. 작가의 문체가 독자들로 하여금 알기 쉽고 재미있게 그려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잡으면 놓기 힘들 정도로 압도당한다. 꼭 나 자신이 소설 속의 “나”가 되어서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기즈키, 나오코, 와타나베 - 남자 둘, 여자 하나.
미도리, 미도리의 남자 친구, 와타나베 - 남자 둘, 여자 하나.
와타나베, 나오코, 레이코 - 남자 하나 여자 둘.
나가사와, 하쓰미, 와타나베 - 남자 둘, 여자 하나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와타나베는 유일한 친구 기즈키와 기즈키의 친구 나오코, 셋이서 항상 만나서 이야기한다. 기즈키가 없으면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할 이야기가 없다. 모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사람은 기즈키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기즈키는 와타나베와 당구를 치고 헤어진 날 밤 아무 이유를 남기지 않고 자살하고 만다.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혼란에 빠졌고, 얼마 후 나오코는 “아미료”라는 정신요양원에 있다고 와타나베에게 연락한다. 면회를 갔던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한 방에서 생활하는 레이코와 이야기하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레이코를 통해서 종종 나오코에게 연락하기도 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것 때문에 선배인 나가사와와 친하게 되고 나가사와의 친구 하쓰미와도 알게 된다. 하쓰미는 결혼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성향을 갖춘 나가사와에게 실망을 느끼던 중 나가사와가 직장 때문에 외국으로 나간 후 다른 사람과 결혼 하지만 2년 후 칼로 팔을 그어 자살한다. 그 후 와타나베는 나가사와 선배와 만나지 않는다.


미도리는 밝고 명랑한 여자다. 하지만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아버지를 병간호하며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나오코의 병세가 호전되지 않고 기즈키의 유령이 주변을 맴도는 동안 와타나베는 머리를 기른 미도리에게 머리 모양이 예쁘다는 말을 하지 않은 이유로 한동안 미도리를 만나지 못한다. 그동안 미도리는 그녀의 남자 친구와 결별한다. 다시 와타나베와 만났을 때 와타나베에게 집중하기 위해 그녀가 사귀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한다.


나오코는 병세가 악화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로 한다. 입원하기 전 잠시 아미료 요양원을 찾은 나오코는 그날 저녁 혼자 숲속으로 들어가 자살한다. 혼란에 빠진 와타나베는 거의 한 달 동안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혹은 걸으면서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 한다. 방황의 끝은 항상 그렇듯이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만날 수 있다. 그 어디에서도 방황을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실을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도쿄로 돌아온 와타나베는 레이코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요양원을 떠나기로 했다고 하며 도쿄에서 와타나베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와타나베가 살고 있는 집으로 와서 그 둘은 다시 나오코의 장례식을 준비한다. 그들만의 장례식이다. 레이코는 나오코가 좋아하던 곡들을 기타로 연주한다. 쉰한 곡을 연주하고 레이코와 와타나베는 함께 밤을 보낸다. 밤을 함께 보낸 것은 나오코를 놓아주기 위한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날 와타나베는 레이코를 보내고 미도리에게 전화한다. 이 세상에 내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너와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고. 미도리는 지금 어디 있는 거냐고 묻지만 혼란에 빠진 와타나베는 자기가 있는 곳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어느 곳도 아닌 곳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른다.

 

지금 어디냐고 묻는 것은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와타나베가 지금 미도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마음이 나오코나 기즈키에게 있는 것인지를 물었던 것일까. 이미 레이코와 세상에서 하나뿐이고 한 번 뿐인 나오코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나오코를 훨훨 보내 버렸는데 아직도 그 끝은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사랑 앞에서 대책 없는 상황을 맞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은 보인다.


죽음이라는 것은 이편과 저편이 아니라 그저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한 가지 일에 불과하다는 것. 죽음이라는 것 또한 살아있는 자들의 일이다. 죽은 자가 계속 꿈에서 나타나고 일상에서 죽은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죽은 사람들의 시가 읽혀지고 그들을 추모하고 생각하는 것들도 또한 같다. 죽어서 말이 없는 자들의 생각을 살아있는 사람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죽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실은 상실로서 끝나지 않고 살아있는 동안 함께 해야 할 동반자일 것이다. 끝없는 상실과 끝없는 시작은 똑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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