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서 좋은 일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일상적으로 보내면서도 항상 어느 계절의 다음 계절을 간절하게 기다리곤 했다. 이를테면 여름이 한창일 때는 제발 이 무더위를 보내고 선선한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열정적으로 들끓던 계절 여름이 너무 빨리 지나갔음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어쩌면 더위를 핑계로 일을 미루어 왔는데, 이젠 꼼짝없이 일을 해야하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여버리게 되었음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지나간 계절에 대해서는 모두 아쉬움이 남지만, 다가오는 계절의 신선함도 포기할 수 없어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계절이 가져다주는 호기심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퇴직을 하기 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혼자만의 시간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또 다른 환희로 다가온다. 혼자가 좋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퇴직과 함께 혼자가 되어 보면, 휴일을 보내고 월요일 출근하여 만나던 사람들을 전혀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잠시 어리둥절해질 수도 있다. 이십 년 이상 혼자서 산을 다니던 세월도 다음날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는 잠재의식 때문에 별생각 없이 그 순간들을 흘려보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진정 혼자가 됐다는 것은 모든 다가오는 시간 속에 오로지 혼자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시간이다.
산길을 걸으며 즐길 수 있는 일
퇴직 후 많은 시간을 보낸 지금, 앞으로도 수없이 남은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그동안 꾸준하게 해 왔던 혼자만의 산행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
집안일이나 일기가 좋지 않은 날을 제외하고는 주 1회 이상 산을 찾기로 했다. 매주 산을 찾으면 일 년이 52주이니 산행 52회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한 번도 52회를 채우지 못했다. 퇴직하면 수월하게 그 숫자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참으로 힘겨운 일이었다. 퇴직 후 1월부터 시작해서 12월이 되어서야 겨우 52회라는 꿈의 숫자를 완성할 수 있었다. 어쩌면 퇴직 후 첫해를 맞아 52회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이를 완성할 수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52회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나는 대로 산을 찾을 것이다. 겨울 산행을 제외하면 날씨가 좋아서 산등성이 전망 좋은 장소에 앉아 그동안 생각했던 일들을 메모장에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등으로 흘러내리던 땀이 바람에 섞여 날아가는 동안, 살아가면서 쓸데없는 트집을 잡지는 않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미루지는 않았나, 필요 없는 물건을 사서 모으지는 않았나, 시간이 남아서 애먼 사람을 의심하지는 않았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으면 산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등을 스치는 바람의 이야기가 귓가에 와닿으며 몸도 마음도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메모장에 쓴 글을 산을 내려와 집에 도착하여 다시 읽어 보았을 때 아무것도 고칠 것이 없는 신선한 문장을 만나게 됐을 때는 참으로 기분 좋은 느낌을 받는다. 억지로 지어내는 글이 아니라 차분하게 내려앉은 마음으로 아무런 가식 없이 써 내려간 글은 거울에 비춘 듯 투명한 것이어서 작품성이나 시적 감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 바로 이런 투명한 글을 모으기 위해 산을 찾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혼자서 산을 찾아야 한다. 산을 오르며 생각하고 힘든 오르막에서 쓸데없는 고민을 털어버리고, 차분해지는 산등성이에서 생각을 고르는 것이다. 나무가 친구고, 바람이 친구고, 멀리 보이는 풍경이 친구다. 산을 찾는 많은 사람이 100대 명산 오르기 등 많은 산을 찾기도 하지만 혼자서 다니는 입장을 고려하여 먼 곳에 가지는 않는다. 가까운 산을 정해 놓고 수시로 찾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물과 간단한 준비물을 배낭에 넣어 어느새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누구와 갈 것인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어디에 갈 것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와 함께 가게 되면 그 누구와 무슨 이야기든지 해야 하고, 그만큼 나만의 생각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혼자서 다닌다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함께 가게 되었을 때 챙겨야 할 음식도 챙길 필요가 없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여러 번 전화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준비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전화도 하고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 것이 살아가는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은 가끔 하기로 하고, 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나 자신을 위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탈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나중에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 할지도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혼자서 즐기는 시간, 혼자만의 이기적인 시간을 즐겨 볼까 생각한다.
책 속에서 여행을 꿈꾼다
직장 생활을 하지 않고 출·퇴근 시간으로 옥죄었던 날들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시간. 전화도 없고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기다림의 시간도 없다.
누군가 찾아오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 회의를 앞두고 회의자료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시간, 업무시간에 다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 등 편안한 시간이라도 책을 손에 잡기 어려웠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맞이하는 것이란 “축복”이라는 두 글자 외에는 어떤 글자로도 대체할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펼치고 책이 안내하는 곳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궁금해지고 책 속의 누군가와 기쁨 슬픔 아픔을 함께 겪어 나간다. 소설 속 주인공의 말투에서 작가의 생각을 읽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로 여행도 함께 한다. 버스도 기차도, 운전도 하지 않고 지도에도 없는 처음 듣는 장소로 여행을 하기도 한다.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 사이에서 혼돈을 일으키는 일도 있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간섭하지 않으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을 다니는 일과 마찬가지로 매주 한 권씩 읽어서 연간 52권을 목표로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목표는 정하되 그곳에 도달하려는 억척스러움은 없다. 바보처럼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눈이 밝은 젊은 시절에 책을 읽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엉뚱한 일에 시간을 빼앗긴 것은 엄청난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고 30분이나 한 시간 동안 집중하게 되면 눈두덩이가 부어 온 세상이 두 겹 세 겹으로 보여서 책에서 눈을 떼야만 하는 상황에 이른다. 하지만 어쩌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수밖에.
혼자서 글 쓰기 놀이에 빠지기
본인의 시를 쓰면서 여러 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면서 한 행씩 맞춰나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본인이 쓴 시를 가지고 나와 어떤 장소에 모여 여러 사람과 합평회를 하는 일도 있지만 그 또한 의견을 받고 참고할 뿐이지 그들 중의 어느 한 사람의 의견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내 시도 아니고 남의 시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를 쓰는 일도 오롯이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수첩이나 메모장을 들고 다니며 수시로 생각나는 것을 기록하기도 하고 특별한 장소에 가기라도 하면 그 장면을 기억하기 위하여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두기도 했다. 이젠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수시로 메모도 할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녹음도 할 수 있으며, 찍은 사진에 설명까지 덧붙일 수도 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연결하여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펼쳐 놓을 수 있다. 모니터에 펼쳐진 사진은 찍은 시간대별로 정렬이 되기 때문에 사진을 보면서 글을 쓰면 시간과 시간 간의 인과관계를 놓치지 않고 기록할 수 있다.
산등성이에 앉아 땀을 식히며 먼 풍경을 보고 있으면 지나온 날들이 구름처럼 흘러간다. 구름은 똑같은 모습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다른 모습으로 변하며 흘러간다. 변해버린 모습은 결코 이전의 모습으로 복귀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는 일도 마찬가지다. 살다 보면 주름이 지고 허리도 굽고 목소리도 변하고 머리카락도 희끗희끗해지고 풍성했던 머리숱도 줄어들게 된다. 구름의 모양을 되돌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전에 써 놓았던 글을 보면 현재 쓰고 있는 글과는 완전히 다른 글이다. 세월의 흐름만큼 나이듦이 묻어날 것이고, – 그것이 성장의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것은 아니다. -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을 겪어오면서 자신도 변하는 모습을 인지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러 젊었을 때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집을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삼십 대에 쓴 글은 삼십 대에 묶어내고, 사십 대에 쓴 글은 사십 대에 묶어내는 것이 세대별 특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일일 것이다. 써 놓은 글을 시집으로 묶어내어야 인생이 앞으로만 가듯이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육십 대가 되어서 지금까지 쓴 글을 모아 시집을 엮는다고 하면 이전의 글은 대부분 버려야 한다. 삼십 대 이후 쓴 글을 한 권의 시집에 모두 엮어 낸다면 가치관이나 생각하는 방식이 세대 별로 달라서 시집 속의 시들이 제멋대로 춤을 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묶어내고 싶으면 연령대별로 또는 주제별로 묶어서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아내가 여행을 갔을 때 냉동실에 있는 정체 모를 검은 비닐봉지를 모두 버리고서 당분간은 의문의 비닐봉지에 발등을 찧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시를 쓰는 일에 빗댄 말이다. 어떻게 생각해 낸 낱말이고 표현인데 버릴 수가 있느냐고 생각하며 한껏 부여잡고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과감하게 버릴 건 버려야 시가 되고 적어도 나 한테만은 마음에 드는 시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덧 퇴직 후 2년이 다 되었다. 집안 살림 일부를 맡아서 하다 보니 설거지를 한 지도 거의 2년이 되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시를 쓰는 일과 설거지를 하는 일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음식을 이것저것 숟가락 또는 젓가락을 사용하여 먹고 나면 그릇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음식을 먹는 일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이라고 한다면 설거지는 정리하는 시간이다. 먼저 그릇에 묻은 찌꺼기를 물로 대충 씻어내는 일은 낱말에 묻어 있는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일과 같다.
시를 읽을 때 아무런 꾸밈없이 써 놓아도 마치 수채화를 그려 놓은 듯 그림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하는데 구차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세상에 있는 모든 형용사와 부사, 조사를 가져와 끼워 넣어서 문장이 걸음도 걷지 못하도록 무겁게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문장을 화려하게 만드는 형용사나 조사를 걷어내고 담백하게 마실 수 있는 맑은 국물처럼 맑은 글을 써내는 것도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든다.
세제 거품을 내어 수세미로 닦는 일은 보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낱말을 가지런히 놓아두고 연마하는 작업과 같다. 거품을 씻어내고 그릇의 종류별로 경사지게 정리해 두면 물 빠짐이 좋아서 보다 빨리 건조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낱말을 기계 조립하듯이 알맞게 배치하는 일이다.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면 보다 빨리 시를 완성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작업은 퇴고하기 전의 거친 시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릇의 건조가 거의 진행되고 나면 마른행주로 깨끗하게 닦아서 찬장에 정리하여 넣고 찬장 문을 닫으면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다. 다시 밥을 먹을 때 그릇을 꺼내면 밥 먹는 일이 시작된다.
건조가 진행되는 시간은 시의 숙성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또 행주로 물기를 닦아내는 일은 시를 정제하는 시간이다. 정제된 시를 비어있는 시집에 한 편씩 정리해서 넣고 시집 표지를 닫으면 아무것도 없다. 독자들이 시집을 펼치고 시를 읽으면 시는 시집에서 나와 독자들에게 고운 목소리로 노래해 준다. 밥 먹는 일이 시작되듯이 시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의령문학을 편집하는 일
매년 1월이 되면 의령문학 편집계획을 만든다. 매년 12월에는 그해 의령문학을 편집하고 완성된 책을 손에 쥘 수 있지만 다음 달인 다음 해 1월에는 또 그해 의령문학을 만들기 위해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의령문학을 만드는 일은 혼자서 하는 일은 아니다. 회원들로부터 자료를 다 받아야 하고 특집과 같은 분야는 담당을 맡고 있는 회원에게 자료 제출을 독촉해야 한다. 권두언과 같이 회장이기 때문에 하는 일도 있고 일반 회원으로 어떤 분야를 맡아서 하는 회원도 있다.
매년 의령문학을 시작할 때는 각자 맡은 바에 따라 권두비평을 써 줄 작가도 섭외해야 하고 문학기행 장소와 기행문을 쓸 회원도 정해야 한다. 그리고 주제가 있는 풍경의 주제도 정해야 하고 향우 원고촉탁, 시화전 준비, 작품 제출할 카페 게시판 만들기 등 일련의 준비를 마치고 나면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시화전을 할 시기를 기다려야 하고, 문학기행 날짜를 기다려야 하고, 수상을 했거나 시집을 출판한 시인들을 조명하기 위해 자료도 작성해야 한다. 각종 행사를 할 때는 사진으로 보는 문협 활동 화보에 사용할 사진도 찍어서 의령문학 카페에 올려 정리해 두어야 한다. 회원들이 카페를 통해서 대화를 해야 내용과 날짜가 기록으로 남을 것인데 카톡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 버리기 때문에 그 시기가 지나면 언제 무엇을 했는지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활동일지를 그때그때 정리해서 카페에 올려 놓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가을이 되면 기다림의 계절이 독촉의 계절로 전환된다. 회원들이 카페를 방문하지 않기 때문에 카톡으로 원고 독촉을 몇 번 하고 나면 그제야 원고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미 제출한 작품을 수정해 달라고 하는 회원도 있고 뭔가 틀린 것 같은데 아무 말도 없는 회원도 있다.
원고를 정리하기 전에 전체적인 틀을 잡아야 한다. 먼저 문학기행이나 출향 문인 초대석, 주제가 있는 풍경의 소개글을 작성해야 하는데 매년 다르게 써야 하기 때문에 올해는 어떻게 쓸까를 생각하는 혼란스러운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의령문학 제작 계획에 맞춰 틀을 완성하고 나면 카페에 제출한 원고를 내려받아서 제자리에 끼워 넣고 정리하는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편집후기까지 쓰면 일 년이 지나가는 것이다.
행사 때마다 찍은 사진이나 시화전 내용, 그리고 활동일지를 기록하여 카페에 정리하는 일들이 모두 의령문학을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하나라도 소홀히 하여 누락 되면 돌이킬 수 없다. 기억은 희미해지는 속도를 점점 빨리해 기록해 두지 않으면 언제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회원들의 작품을 정리하는 시간은 일 년 동안 회원들이 생각하고 개별적으로 활동했던 부분들을 읽는 시간이다. 누구보다 먼저 읽을 수 있고 책 전체를 보기 때문에 편집을 완성하면 적어도 의령문학을 두세 번 읽는 셈이 된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12월 마지막 모임에서 회원들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거창하게 연다. 편집후기에서 항상 이야기하듯이 또 다음 호를 준비해야 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
책을 읽는 일과 비슷한 일은 영화를 보는 일이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 첫 영화를 보면 조조할인을 받는다. 영화 관람료가 너무 많이 올라서 그런지 평소 때도 관객이 많이 없다. 어떤 때는 그 큰 영화관에서 혼자서 영화를 볼 때도 있다. 예매를 하고 가기 때문에 몇 명이 영화를 볼지 모르는 입장이라 막상 혼자서 영화를 보게 되면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면 영화에 빠져서 그런 마음이 싹 가시고 없다.
의령에도 작은 영화관이 생겼다. 평일 낮에 가면 혼자서 보는 일도 많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낮에 영화를 보긴 어려울 것이다. 의령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볼 수 있는 상황이면 다 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영화관으로 향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리가 뻐근해지도록 페달을 젖는다.
간단한 운동을 위해 의령을 걷기도 한다. 집에서 정암루까지 걸어가면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왕복 두 시간 정도 간편하게 걸을 수 있다. 먼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이 들면 집에서 출발해 화정면 화양리, 친환경골프장, 정암루를 거쳐서 돌아오면 약 20킬로미터 정도. 강변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날개를 퍼덕이며 무리 지어 유리처럼 맑은 강물 위를 흘러 다니는 청둥오리들을 쳐다보며 하늘과 강물이 원래 하나였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문득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천길을 따라 걷고 싶으면 자전거길과 농로를 거쳐 칠곡 신포숲까지 걸으면 된다. 약 7km. 왕복 14km. 사람들이 많이 걷는 시간을 피하여 오전 10시 정도부터 걸으면 오로지 혼자서 걷는 길이 된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약 삼십 분 정도 거리다. 신포숲에 도착하여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명상에 잠겼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여름보다는 겨울의 쌀쌀한 기운이 코끝을 얼얼하게 할 때면 계절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찬 기운 때문에 얼굴이 팽팽하게 상기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라. 손 대면 터질 듯이 발갛게 부푼 볼을 하고 온 산과 들을 돌아다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엄마 품으로 돌아간 동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였던 날들은 지나갔지만 스스로 정하는 규칙 없이도 세월이 잘도 간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산불이 나면 출동하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서도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밤이 새도록 사무실에 대기를 하곤 했다. 퇴직 후 혼자가 되면서 만세를 불렀다. 내키지 않은 일 모두 안 해도 되니 좋았고,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가기 싫은 곳으로 가지 않아서 좋았다.
이제 눈치 볼 일 없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의 시간을 폐기처분하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폐인에 가까워질 것이다. 평일에도 마음 내키면 산에 갈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고 바다를 보러 갈 수도 있다. 억지로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애쓰지 말고, 혼자서 명상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혼자여서 즐거운 일을 찾는 것이 나를 찾는 일이 될 것이다. 살아왔던 일들을 정리하면서 시라는 도구를 이용해 한 편씩 일상을 기록해 나간다면 어느새 시집 한 권이 완성될 것이다.
나를 아름답게 만들면 세상이 아름다워질까?
아름답다라는 말의 어원과 관련하여 우연하게 컴퓨터로 검색해 본 적이 있다. 어원은 ‘안다’의 어간 '안-'에 명사형 어미 '-옴'이 붙어 '아롬'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알다라는 동사에 접미사 음이 붙어서 아는 것이 아름다움의 본질이 된다는 견해다.
아름답다에 대한 또 다른 견해는 15세기 무렵 수행자들이 아름답다를 아(我)답다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我)답다”“나와 동일시하다”라는 물아일치의 경지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으며, 나를 알아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의미라고 말하고 있다. 누구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빛나게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가장 나다울 때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나를 잘 가꾸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매일 마시는 물을 깨끗하게 정제하여 마시듯이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여 깨끗한 마음이 된다면 상대방을 쳐다볼 때도 순수한 마음으로 쳐다볼 것이다. 그러면 둘의 관계가 아름다워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아름다워진 관계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혼자여서 좋은 일들을 꾸역꾸역 해나가고 있는 것은 나를 깨끗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가장 나다움에 이르게 될 때 남과 비교하여 불필요한 경쟁에 휩쓸리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엉뚱한 자만심이나 부족하면서도 부족하지 않은 척하는 마음 등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허세나 이기주의를 청산하게 되면 언젠가는 세상과 소통하는 아름다운 날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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