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음의 미학
- 2002.11.28 -
아무도 바쁘지 않은데 혼자만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휩싸여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나와 관계없는 어떤 사람들을 위한 십자가를 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십자가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마음 없지 않다. 사람들의 마음속엔 천사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악마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천사도 악마도 그 무엇도 없는데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어떤 상황에서 느끼는 기분에 따라 천사든 악마든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눈동자가 티 없이 맑아 그 눈 속에 풍덩 소리를 내며 뛰어들고 싶은 맑은 눈을 가진 아이를 보았을 때 느껴지는, 그리하여 나의 마음속에 뭔가가 느껴질 때 가히 천사적인 마음이 우러나온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 반대로 때 아닌 불행을 겪게 되었을 때 왜 나만 이 세상에서 버림받는 것일까 하는 자학을 하게 되고 끝내는 무언가의 수작을 벌이게 된다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악마적인 마음이 생성되게 될 것이고 그것을 참지 못하면 끝내는 밖으로 분출이 될 것이다.
세상을 똑바로 보라는, 그래서 똑바로 살아가라는 말들이 많지만 그것들도 자신의 마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말들은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술자리든 차를 마시는 자리든 가끔씩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 무슨 일이든 즉흥적이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여 계획적인 삶을 엮어가면서 조그만 일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세를 가져보자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만을 좇아갈 때 계획으로만 끝나버리는 실행되지 않는 계획을 만드는 사람으로 남을 뿐이다.
아침에 직장에 출근하여 벅적거리는 전화와 사람들의 말소리, 덜거덕거리는 의자 소리, 사람들 왔다갔다하는 소리, 온갖 소리가 어우러져 웅성대는 중에 문득 걸려온 전화 속에서 반가운 목소리를 듣게 되는 아침. 찌든 일의 반복 속에서 생의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임에 틀림없을 것이며 살아가는 행복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게으른 사람들의 핑계가 있다.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일 것이라 생각이 들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고 멀리 있다는 핑계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친구들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제자리에 앉아 신세한탄만 하고 있는 경우가 그러하다. 어떤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친구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면 지금 즉시 떠나라! 그리고 만나라. 무덤 속에 들어간 친구를 만나러 갈 것인가. 무덤 속에서 친구를 부를 것인가? 선택은 개개인에게 달려있을 뿐이다.
등산을 자주가야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정작 일요일 아침엔 이불을 뒤집어쓰고 달콤한 아침잠에 취해 헤어날 줄 모른다. 그리고 그 다음날 혼자만의 독백을 하곤 한다. “아! 어젠 등산을 한 번 했어야 했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좀 바빴던 것 같애”.
그럼에도 세상은 쉼 없이 흘러가고 있다. 언제든 연말이 되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많은 업무와 많은 만남의 자리가 만들어지고 덧없이 지나가고 있는 한해를 아쉬워하게 된다. 그리고 한 해 동안 겪었던 많은 일들을 생각해 본다. 특히 참는다는 것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 본다. 참아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아야하는 세월. 쏟아지는 잠을 참고 한편의 글을 완성시켜야 하는 밤. 운전을 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술자리에서 술을 참는 것.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것. 등산을 하면서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픈 것을 참아야 하는 것. 아이가 말썽을 부려도 그것을 꾹 참아내는 것. 참지 않으면 그 무엇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생각. 참는 세월 속에서 세상의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많은 발명품이 만들어지고 아름다운 생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또 한해가 간다. 가끔씩 난 얼마나 참아 왔을까. 참지 못하여 일을 그르친 일은 없는지. 참지 못하여 누군가의 사이를 이간질하지는 않았는지. 참지 못하여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이 개개인의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떠한 계획이라도 그것을 실천하고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것을 참고 견디며 하나씩하나씩 이루어 나갈 때 그것은 기쁨으로 다가올 것임에 틀림없다. 사물과 사회현상을 아름답고 진실하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욕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3초만 참아보는 느림의 미학도 곁들여 가면서 시골의 신선한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켜 보아야겠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아침에 일어나 말썽 피우는 아이를 보면서도 부드러운 말로 타이르는 그래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악마적 속성을 잠재우고 천사적 속성을 보다 많이 만들어 가는 참음의 미학을 펼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의 나라 (0) | 2008.05.28 |
---|---|
요즈음 세상에 대한 넋두리(2003년 3월) (0) | 2008.05.28 |
가을 산행 (0) | 2008.05.28 |
Еmile (0) | 2008.05.28 |
자굴산 산행(2001. 8.10) (0) | 2008.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