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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풍경

어수선

by 1004들꽃 2021. 4. 12.

어수선


살아가는 일이란
어수선한 일을 어수선하게 마무리하고
다시 어수선한 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평생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일도
어수선한 틈을 타서
원래부터 몰랐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이
사람의 일도 칼로 물을 베는 것처럼
베는 것 같기도
베지 않은 것 같기도 한 것이다
나중에 물어보면 벤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조차도
벤 적이 없다고 진술하면
애초부터 베지 않았던 일이 되는 것처럼
분명하게 살 필요 없이
그냥 어수선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어떤 책에 적혀 있었으면 좋겠다
책이란 어수선한 것들을 글자로 적어서
철학적인 것인 냥 포장하는 작업이라
웬만한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책에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핑계를 댈 수 있는 방편이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란
칼로 물을 베듯이
베어도 베지 않은 듯
베지 않아도 벤 것처럼
어수선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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