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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초대

살아남기 위하여/정호승

by 1004들꽃 2017. 6. 5.


살아남기 위하여


정호승



사람에게 절을 하지 않고
사람이 쓴 모자에게 절을 하고 살아남았다
사람에게 절을 하지 않고
사람이 앉은 의자에게 깊숙이 허리 굽혀 절을 하고
매일 아침마다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날 밤이면 첫눈이 내려도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되는 일이 더 힘이 들었다
훌륭한 남편이 되는 일은 더더욱 힘이 들었다
한번은 모자를 집어던졌다가 내 모가지가 날아갈 뻔했다
의자를 집어던졌다가
내 다리가 고층 빌딩 창밖으로 내동댕이쳐질 뻔했다
다행히 간신히 살아남았으나
이웃을 위해 언제나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어
눈 오는 날이면 새보다 먼저 눈길을 걸어가
내 슬픈 발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거리에 나가 하루 종일
빈 밥그릇을 들고 서 있는 눈사람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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